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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쿰란 사해 사본이 나오기 까지 쿰란사해성경의 진실
아이야소피야
2013. 2. 12. 12:40
[본문스크랩] 쿰란
사해 사본이 나오기 까지
쿰란사해성경의
진실 / 요한묵시록
해석


http://blog.naver.com/kgs3540/60183232365
쿰란 사해 사본이 나오기 까지, 첫번째 이야기전 세계를 2천년의 잠에서 깨운 1947년의 봄
관련 사진들은 마우스로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루는 양들을 치던 목동 무함메드가 잃은 양을 찾고 있었는데, 한 벼랑위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자기의 잃은 양을 찾으려고 내려가기 앞서, 우선 혹시나 사나운 짐승들이 있지나 않나 싶어서 그들을 쫒기 위해 돌을 던져본다. 그러자 그는 안에서 무언가 쨍그렁 하고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무하메드가 조심히 그 아래로 내려가 보니 깨진 항아리 조각들과 함께 양피지위에 무언가 옛 날 글씨들로 빼곡하게 쓰여져 있는 낡아빠진 두루마리들을 보게 된다..... 이것이 2천년 이상 숨겨져 있던 언청난 보물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그 첫 사건이다. 또는 무하메드가 금광을 찾기 위함이었다는 말도 있다. 이곳이 쿰란 연구의 시작이 된 바로 쿰란 제1번 동굴이다. ![]() ![]() 하여간, 무하메드는 이것을 갖고 베들레헴 장터에 갔다가 거기서 구두수선공인 '칸도'(원래 이름은 Kahil Iskander Shahin이지만 '칸도' 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를 만난다. 칸도는 가죽 신발들의 끈들을 꿰메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 그는 골동품 중개상으로 일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칸도는 그것을 자신이 속해있던 시리아 정교회 소속 예루살렘의 성 마가 수도원 당시 감독 이었던 사무엘(Athanasisus Yeshue Sammuel)에게 가져갔다. 그는 이것이 시리아 문서인줄로 알았다. 사무엘 대주교는 한 부분을 불로 태우자 그 모양이 오그라드는 것을 보고서 이것이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음으로 이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이며, 그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 위해 시내반도에 있는 카타리나 수도원에 학자겸 주교로 가 있던 영국인 알렉산더(Boyd Alexander)와 함께 조각 하나를 찢어 두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았다. 금방 부스러지고 말았다. ![]() ![]() 처음에 학자들은 이것의 연대를 기껏해야 중세때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이미 1920년대 필레스틴에 고고학 작업들이 있었고, 곳곳에서 암시장들을 통해 거래되던 옛 문서들이 있었지만, 모두 그리 오래된 것들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쿰란에서 나온 이것도 역시 그런 모조품정도의 하나일 거라고 여겼다. 1948년 2월 사무엘은 당시 고대근동 미국연구원(오늘날 올 브라이트 연구소로 불림) 성서학자인 트레버(John C. Trever) 박사를 부른다. 트레버 박사는 이것이 놀라울 정도로 오래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트레버 박사는 그 7,34미터의 두루마리를 보고서 기원전 1-2세기의 이사야 사본이라고 알아맞췄다. 54쪽으로 된 1장에서 66장까지 전부 다 들어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전해진 그 어떤 히브리 사본의 연대보다 1000년 이상을 앞댕기는 순간이었다. 1990년, 94년에 실시된 방사능 연대 측정실험은 이를 기원 전 2세기 것으로 결정했다. 트레버 박사는 사무엘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중 두 장을 윌리암 올브라이트 교수에게 보낸다. 1948년 3월 8일 올브라이트 교수는 트레버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금세기 최대 사본발견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무슨 믿기지 않는 발견이란 말인가요....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품이 틀림없소...." ![]()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원래 동굴입구 아래쪽으로 그 보다도 훨씬 큰 입구가 이미 뚤려 있었다. 도굴단들이 벌써 다녀갔던 것이다. 최소한 이곳엔 56개의 항아리들과 대략 80개의 두루마리들이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다 사라지고 그곳에서 단지 70개의 조각들만을 주워 돌아온다. ![]() ![]() 우여곡절끝에 베들레헴에 온 사드가 칸도를 만나게 될때의 일들은 참으로 목숨을 건 일이었기도 했다. 결국 사드는 칸도의 환심을 사게 되고 드디어 칸도는 예루살렘 박물관까지 오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동굴의 이야기는 꺼낼 생각도 못한다. 잘못하다간 칸도는 물론이고 그 엄청난 보물들이 어디론가 꼭 꼭 숨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칸도가 드디어 사드에게 자신의 가죽 지갑을 보여준다. 거기엔 손가락 크기의 무언가 적혀 있는 작은 가죽조각 몇이 들어 있었다. 칸도가 이를 팔려는 눈치를 보인다. 그리고 칸도는 다시 돌아간다. 사드는 자심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절대 실수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칸도가 돌아가자 마자 사드는 이 사실을 박물관 관장인 하딩장군에게 알린다. 며칠이 지나 칸도가 다시 사드에게 왔을때, 누굴위해 사려고 하느냐고 사드에게 묻는다, 잠시 예루살렘을 방문중인 한 영국인 교수라고 사드는 얼버부린다. 그리고 그 영국인이 나머지 모두를 다 사고자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여리고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면서 칸도는 반드시 그 영국인이 나와야 한다고 단서를 단다. 칸도가 가자 사드는 무작정 아무 영국인 하나를 우선 찾는 일이 급해진다. 물론 그 방면에 전문가같은 행세도 부려야 할 사람이었다. 다행히 박물관에 한 영국인 직원이 쑈를 하기로 하고 그들은 여리고에 있던 다 쓰러져가는 한 호텔로 향한다. 사드는 칸도에게 그 영국인 가짜 교수를 통해 요르단 돈으로 800 파운드, 약 2300 달러까지 지불하겠다고 말한다. 하딩이 사드에게 지시했던 거였다. 다 낡아빠지고 너덜너덜한 쪼가리들한테 그동안 값이 엄청나게 뛰어 오른건 이미 라디오를 통해 바로 미국에 와 있던 사무엘 감독이 자신의 두루마리를 25만달러에 팔려고 한다는 방송이 나간 뒤였다. 칸도가 갖고 온 조각들을 대충 깔아 놓으니 약 1.25m2정도 펼쳐졌다. 서로간에 흥정이 오고 갔고 다음날 예루살렘으로 온 칸도에게 사드는 결국 요르단 돈으로 200파운드를 얹어 1000 요르단 파운드를 건네준다. 무엇이 되었든지 비록 다 낡아빠지고 너덜너덜한 조각들이지만 더이상 무지한 이들 손에서 더 헤어지도록 할 수는 없었다. 뒤돌아 나가는 칸도에게 사드는 한마디 던진다. "참, 하딩씨가 안부 인사를 전하시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