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은 환국민이며 천상니비루 왕실의 후손들이다

2014. 1. 8. 22:17History of Korea

한국민은 환국민이며 천상니비루 왕실의 후손들이다

 

한국민의 혈통은? 

한국민은 실제로는 환丸국민으로 읽어야 하며 말해야 한다

환국민은 알환丸 환국민이다

구형의 알에서 온민족이란 뜻이다

날개 달린 둥근공은 니비루의 상징이다

환국의 시초는 이렇게 하늘에의 둥근 공에서 시작된 민족이다

대환민족은 큰대자처럼 생긴 공에서 온것이다

이씨 배씨 설씨 정씨 박씨 주씨 최씨 손씨  이 성씨들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왔거나 천자이거나  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인류의 아버지 엔키신 주신(ZU)의 아들들은 모두 17명이다

그중 니비루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모두 6명이다

적자의 왕실 가족이긴 하지만 아버지 엔키신의 혈통으로 왕권 상속의 순위에서 밀린 이 세자들은 모두 니비루를 떠나 아버지가 계시는 지구로 왔을 것이다

신라의 경주는 지붕이 금으로 덮힐 만큼 금이 풍부한 지역이 었다

그리고 진골성골로 혈통의 순수성으로 왕권상속 순위가 결정된 것은 니비루와 똑같은 왕실 제도이다

 

그렇다면 만약  그 6명이 지구로 왔고 그 자녀들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려 했다면 혈통이 다른 자손들과 섞이지 않게 한곳에서 자손을 번성 했을 것이다

이렇게 6성씨와 박씨와 김(금)씨 그리고 주몽은 조상이 알이거나 빛으로수태되어 태어났다

우리민족은 이렇게 모두 천자의 아들들의 자손의 국가 였을 것이다

이 성씨에 해당 되지 않는다고 맘 상할일은 없어도 될것 같다

그것은 이 성씨를 가진 사람이 조상중에 단 한명도 없는 사람은 대환민국에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유전자는 부계 모계 각각 50%씩 받아 하나의 생명이 태어 나기 때문이다

 

 

 

 

 

경주金씨

시조는 김알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5년(탈해왕 9) 3월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는데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보고하자 왕은 사람을 보내어 금궤(金櫃)를 가져온 후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탈해왕은 기뻐하여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 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하며 거두어 기르니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金)으로 하사하였으며 시림(始林)을 계림(鷄林)으로 고쳐 나라 이름을 삼았다. 이후 김알지의 7세손 김미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왕 경순왕까지 38명의 왕을 배출하여 587년 동안 신라를 통치해 왔으며 경주를 비롯한 600여 개의 관향(貫鄕)으로 분적되었다. 경주김씨는 김명종(金鳴鍾)을 일세조로 하는 영분공(永芬公) 명종파(鳴鍾派), 김은열을 일세조로 하는 대안군(大安君) 은열파(殷說派), 김장유(金將有)를 일세조로 하는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 장유파(將有派), 김인관(金仁琯)을 일세조로 하는 태사공(太師公) 인관파(仁琯派), 김문기를 일세조로 하는 백촌공 문기파, 김덕재를 일세조로 하는 병판공 덕재파, 김존일을 일세조로 하는 장사랑공 존일파, 김정백을 일세조로 하는 수문장공 정백파로 크게 분파되었고, 각 분파마다 작은 지파가 여러 개씩 있다. 경순왕 아들 9형제가 각각 분적하여 나갔다. 다만 셋째 아들 김명종과 넷째 아들 김은열과 김순웅(金順雄) 장군 후손들만이 경주김씨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본관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朴혁거세

〈삼국유사〉나〈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와 그에 의한 신라 건국신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고허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기슭 나정(蘿井) 곁 숲속에서 큰 알을 발견했는데, 알 속에서 어린아이가 나와 이 아이를 길렀다. 그의 나이 13세가 되던 해 6촌의 촌장들은 그의 출생이 신이(神異)하다고 하여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나라이름은 서라벌(徐羅伐:徐伐·徐那伐)이라 하고 즉위와 동시에 알영을 왕비로 맞아들였는데, 알영은 사량촌의 알영정 가에 출현한 계룡(谿龍)이 그 왼쪽 갈비에서 탄생시킨 용녀라고 한다. 즉위 후 왕비와 함께 6부를 돌며 농사와 양잠을 장려했으며, 서울을 금성(金城)으로 정하고 성을쌓았다. 죽은 뒤 담암사(曇巖寺) 북쪽에 있는 사릉(蛇陵)에 장사 지냈다."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로서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신라의 옛이름인 서라벌의 왕위로 즉위하자마자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알영과 혼인을 했습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농사와 양잠을 장려했으며,

수도를 금성(지금의 경주)으로 하고 성을 쌓았습니다.

박혁거세는 박과같이 생긴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박'이라는 성이 붙었고 혁거세는 이름이 아니라 존칭으로,

이름은 불구내라고 합니다. 이는 혁을 뜻으로 읽고 거를 음으로 읽은

불구와, 세를 뜻으로 읽은 내를 합한것으로 밝디 밝은 나라, 즉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배씨(裵氏)

진한 개국 설화에 등장하는 사로 6촌(斯盧六村)의 하나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촌장 지타(祗陀 또는 只他)이다. 그는 다른 6부 촌장들과 박혁거세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고, 총재태사(冢宰太師)에 올랐다. 32년 신라 유리왕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가리부(加利部)를 한지부(漢祗部)로 고치고 배(裵)씨 성을 사성하였다. 신라의 인물로 성덕왕 때의 상대등(上大等) 배부(裵賦), 희강왕 때의 아찬(阿飡) 배훤백(裵萱伯), 정강왕 때의 현령(縣令) 배영숭(裵零崇)의 기록이 있다. 현재는 계대를 고증할 보첩이 실전되어 각 파마다 다른 조상을 시조로 삼고 있다. 신라, 고려, 조선 삼조(三朝)에 걸쳐 개국원훈(開國元勳) 배지타(裵祗陀), 배현경(裵玄慶), 배극렴(裵克廉)을 배출하였으며, 신라의 귀족 성씨로부터 유래한 대한민국의 토착 성씨 중 하나이다.

 

정鄭

시조는 신라의 6촌(六村) 중 취산(觜山)진지촌(珍支村:本彼部)의 촌장인 지백호(智伯虎:佐命功臣)이다.[1] 경주 정씨(慶州鄭氏)를 비롯하여 동래, 봉화, 영일, 예천, 진주, 초계, 하동 등이 있다.

“삼한시대 진한 사로 6촌 촌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 건국에 공을 세웠다. 9년 봄에 육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성(姓)을 하사했다. 간진부(干珍部)는 본피부(本彼部)가 되었으니 성은 정(鄭)이었다”로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정씨는 지백호를 원조로 모신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취산 진지촌의 촌장 지백호(智伯虎)가 화산(花山)에 내려와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의 조상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최씨와 정씨들은 《삼국사기》를 따라 사량부에 최씨, 본피부에 정씨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경주 양산재(陽山齋)에서는 삼한 6부 대부족장의 원훈에 감은하는 신라대제(新羅大祭)를 거행하고 있다.
중시조 문정공(文正公) 정진후(鄭珍厚)는 고려 때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 개국공신인 정희계(鄭熙啓), 세종 때 좌찬성에 추증된 정지년(鄭知年), 명종 때의 성리학자 정지운(鄭之雲),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전사한 정발(鄭撥) 등이 있다.

 설(薛)씨

기원은 신라 건국 설화의 고야촌(明活山 高耶村) 촌장 호진(虎珍)이다. 신라 유리 이사금 9년(32년)에 6촌이 6부로 개칭하고, 명활산 고야촌을 습비부로 고칠 때 성을 설(薛)씨로 하였다.[1] 역사상 유명했던 설씨는 신라 진평왕, 신문왕 대의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이다. 설총은 원효와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에서 태어나 국학(國學)을 크게 진흥시키고 이두(吏讀)를 집대성하였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38,766명이 있다.

 

경주 설씨

경주 설씨의 시조는 신라의 촌장 설거백(薛居伯)이다.순창 설씨[편집]순창 설씨의 시조 역시 경주 설씨와 같은 '설거백'이며 후에 설자승(薛子升)이 고려 인종 때 호부시랑(戶部侍郞)으로 순화백(淳和伯: 지금의 순창)에 봉해짐으로써 본관이 경주에서 나뉘게 되었다.개성 설씨[편집]개성 설씨의 시조는 설귀창(薛貴昌)이다. 경주 설씨의 파조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와 대학자 설총(薛聰)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손(孫, Son)

삼한시대 진한 사로 6촌 촌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 건국에 공을 세웠다. 9년 봄에 육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성(姓)을 하사했다.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가 되었으니 성은 손(孫)이었다”로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촌장은 구례마(俱禮馬)로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손씨는 구례마를 원조로 모신다.
경주손씨(慶州孫氏) 시조는 효행으로 이름난 손순(孫順)이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을 알 수 없어서 후손인 손경원(孫敬源)을 기세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신라 유리왕 9년에 무산 대수촌 촌장 구례마(俱禮馬)의 손자 직(稷)이 손(孫)씨가 되었다.

안동 손씨(일직 손씨)는 시조 순응(荀凝)이 고려 현종 때 손(孫)씨로 고쳤다.

근현대에 부모의 재가, 입양으로 손(孫)씨가 된 경우가 있다. (손지창)

정유재란병자호란 과도기, 일본에서 귀화하여 조선식 이름으로 고친 손씨가 있었다.(항왜)

 

최崔씨

“삼한시대 진한 사로 6촌 중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공(蘇伐公, 蘇伐都利)은 박혁거세를 양육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서기 32년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이 사량부(沙梁部)로 개편되며 최(崔)씨 성을 받았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최씨는 소벌도리를 원조로 모신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소벌도리가 “사량부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되어 있다. 현재 최씨(崔氏)와 정씨(鄭氏)들은 《삼국사기》를 따라 사량부에 최씨, 본피부에 정씨를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경주 양산재(陽山齋)에서는 삼한 6부 대부족장의 원훈에 감은하는 신라대제(新羅大祭)를 거행하고 있다.
최씨의 시조는 신라 대표지성 최치원으로, 당에 유학하여 18세에 빈공과에 급제하였다.

 

이씨(慶州 李氏)

표암재

표암재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6촌 촌장의 수장으로 화백회의를 주재하고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신라 건국의 원훈으로 좌명공신이었고 아찬 관직에 올라 군무를 살폈다. 유리왕 9년(AD32년) 양산부(楊山部-양산촌)를 급량부(及梁部)로 개칭하고 이씨 성(李氏姓)을 사성(賜姓)하였다. 시조로부터 현재까지 약 2,000여년의 역사를 가진다.


[2013.7.11 NASA SOHO에촬영됬었던,우주선.지구크기의 5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한국인이 니비루 천상의 왕실의 직계혈통이라면

한국은 진정한 신의 자손이자 신의 행성의 왕실의 자손이다 라는 것이다

수메르벽화속의 엔키신의  3째 아들니기시다의  날개달린 공 우주선

이씨성의 모양과 같다 큰대 大 자에서 내려온 아들 李~^^ 

그리고 이런 일들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

왜 한국 전쟁때 예수님이 발현 하셨는지 알것 같다

그분의 자식과 조카들 그리고  자손이  이 곳 한반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몽은 해모수로 알려진 마르둑신의 아들이다 해모수의 해자는 태양을 뜻하는 순수우리말이 어원이다

그리고 배달 민족은 배처럼 생긴 달에서 온 민족이란 뜻인것 같다

왜냐하면 엔키신의 상징은 누은 초승달 그 모양은 배와 같다 

그래서 배달 민족 순수 우리말로 말이다 ~!!!

 

진흙 속에서 인간과 신이

하나로 섞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신이 갖고 있던 육신과 영혼이

무르익을 것이다.

영혼은 피로 엮인 혈연으로 묶일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로 생명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여 영혼이 피로 엮인 혈연 안에 묶여 있다는 것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수메르유적 점토판 기록중 '신의 유전자' 엔키의 시

 

참고 http://blog.naver.com/kgs3540/60190648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