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

2023. 3. 17. 03:05고조선/훈족,흉노족,월지족

 

 

1. 개요
나는 다른 점에서는 스키타이 족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인간사에 있어,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로도토스 역사 6권 46p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지금의 러시아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북서부 일대의 스텝 지역에 존속했던 유목민족.
2. 기원과 역사[편집]
러시아와 중앙 아시아의 스텝 지역에 거주했던 이란계 유목민족이다.
스키타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기원되었으며, 그리스어의 뜻은 '궁수'(Skuthēs)란 뜻이며, 페르시아에선 사카라고 불렀는데 뜻은 동일하다. 둘다 원시인도유럽어에서 '쏘다(Shoot)'를 뜻하는 (s)kewd-와 연관있다. 아시리아에선 아쉬케나지(Askuzai)라고 불렀는데, 이건 유목민이란 뜻이다.
본디 이들은 그저 유목 이란계 민족이었지만 기원전 11세기쯤 유입된 다른 이민족들과 섞이며 스키타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기마 민족으로 마차가 아닌 직접 을 타는 이동 수단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한 기원전 9세기 즈음에 키메르인이라 불리는 다른 유목 민족이 있었는데, 스키타이인들과 경쟁을 반복하던 중 스키타이의 기술이 좋아지고 수가 많아지자 기원전 7~6세기에 걸쳐 키메르인들을 캅카스 지역 너머로 몰아내고 이들은 텅빈 캅카스, 카르파티아 산맥도 넘고 동서남북으로 크게 세력을 확장시킨다.[1] 이에 겁을 먹은 메디아 왕조의 왕이 대규모 침공을 가했으나 격퇴해낸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명군인 다리우스 1세도 스키타이 정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유목 민족 특유의 기동성을 이용해서 청야 전술을 펼치며 치고 빠지는 전술을 행하자, 페르시아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해야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세력이 점점 줄어들더니 기원전 4세기에는 서방에서 몰려온 이민족들에게 서방 영토 일부를 빼앗기고, 기원전 3세기에는 켈트 왕국의 압박으로 서방의 영토를 영구히 상실했다.
스키타이는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넓혔는데 당시 동쪽에 있던 스키타이 또는 사카들은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 동쪽에서 흉노오손, 월지가 공격하여 남쪽인 그리스의 박트리아와 파르티아로 옮겨가 두 국가를 공격했고 파르티아는 스키타이인들을 방어했으나 그리스 박트리아 왕국은 멸망하였다. 또한 스키타이들은 인도 북부에 있던 그리스 인도 왕국도 쳐들어가 인도-스키타이가 되었으나 세력이 약해져 페르시아화되었는지 멸망하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사라지게 되었다.
서쪽에 있던 스키타이도 크림 반도와 그 근역에서 살아가다가 2세기에 세력이 약해져 이민족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3. 생활상[편집]
그리스의 역사가에 따르면 이들은 4가지로 구별되는 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대로 남아 농사하며 먹고 살자던 농경 스키타이, 그에 찬동하는 상공 스키타이, 그 외의 기타 유목 스키타이, 그리고 이 중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로열 스키타이. 결국 로열 스키타이를 위주로 한 집단이 승리를 거두고 스키타이는 유목제국으로써 발돋음하게 된다.
또한 이들이 남긴 자료나 물건 외부의 자료 등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노란머리에 튀어나온 광대와 장신에 큰 체구를 지니고 털이 많은 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국가들과 인접하여 그리스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무역을 하며 동쪽 알타이 지방의 황금이나 모피들을 헬레니즘 국가의 금 세공 물건들과 교환하였다. 그래서 스키타이의 황금 문화는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황금을 숭상하는 문화를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유럽 흑해 지방 드네르프강 유역과 중앙아시아 유역에서 이들이 남긴 황금 유물이 출토된다.

사카와 오르도스로 이어지는 황금문화의 원류격. 스키타이 유물 중 신라 금관이나 고구려 불꽃무늬금관, 백제 왕관 장식과 유사한 양식의 것들이 있어 관심을 받기도 하는데, 이게 더 나아가서 '스키타이=한반도인' 이런 이상한 환빠식 주장으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상기했듯 인종도 다르고, 당시라고 문화 교류나 교역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 지역이나 연대차를 고려해도 유사한 양식의 물건을 쓴다고 다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식의 주장은 벤츠 끌고 다닌다고 다 독일인은 아니듯 어폐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당대의 교역이 어느정도 수준으로 이루워졌는지 알수있기 때문에 의의가 없는것은 아니다.
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에 다소 잔인한 문화가 있었다. 전쟁에서 잡은 포로의 가죽으로 망토 등을 만들었다든가 승리자가 부자인 경우에는 포로의 두개골을 가공해 도금하고 잔으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헤로도토스가 여기에도 방문했었는데 이 물건들을 체험해 볼 수 있었고 평도 남겼다.(...)
<서양고대전쟁사박물관> 저자 존워리에 의하면, 스키타이인들은 활시위를 당길 때 다른 유목민족들과 달리 중지와 검지를 이용하는 오늘날의 양궁식 사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리어 당시 그리스인들이 엄지와 검지만을 이용하는 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국궁도 엄지와 검지만을 사용하지 않나
4. 역대 통치자[편집]
중간에 계보가 끊겨있기 때문에 기록상 알려진 순서로 적었다.
순서
이름
초대
이쉬파카
2대
프로토튀아스
3대
4대
아리안트
5대
스파르가피프
6대
그누르
7대
8대
9대
아리아페이테스
10대
11대
12대
13대
아가르
14대
스킬루르스
15대
팔라카
5. 기타[편집]
소그드 인은 본래 스키타이라고 불렸다.
만화 히스토리에에서는 주인공인 에우메네스의 출신으로 나오고 스키타이의 왕인 아테아스가 잠깐 등장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의 아틸라 미션에서 여전사들이 등장. 무슨짓을 한 건지 길마다 시체들이 널려있으며, 만나면 일꾼을 달라고 한다. 일꾼을 일정수 갖다주면 일꾼은 나무하러 보내고, 보수로 자폭병을 준다.
문명 6에서 토미리스 여왕을 지도자로 하는 스키타이 문명이 등장한다.
'스키타이'라는 표기는 라틴어 어근 Scyth-에 복수 주격 어미 -ae를 붙인 Scythae에서 왔는데, 켈트족, 고트족, 훈족 등 다른 고대 민족 이름들은 모두 복수 어미를 생략한 어근 형태로 표기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만약 일관성을 지켜 어근만 표기하면 '스키트족'이 될 것이다. '스키타이' 표기에 관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