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그함마디 문서란
2013. 4. 9. 16:40ㆍ카테고리 없음
나그함마디 문서란
1945년 12월 어느날,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나그함마디라는 곳 부근 산기슭에서 밭에다 뿌릴 퇴비를 채취하려고 땅을 파다가 땅 속에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귀신이라도 들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으나 금덩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귀신이 나오지않아 안심은 되었지만, 실망스럽게 금덩어리도 없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가죽으로 묶인 열세 뭉치의 파피루스 종이 문서 뿐이었다. 문서가 들어 잇는 그 항아리가 금으로 가득한 항아리보다 더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던 그는 단지 고문서도 골동품으로 값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 오렌지, 담배, 설탕 등과 맞바꾸었다. 그 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고문서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4세시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을 통치할 하나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를 공인하고,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다. 그에 따라 325년 니케아공의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젊은 추기경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파를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27권을 선별해 그리스도교 경전으로 정경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367년 자기의 신학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이 때 이집트에 있던 그리스도교 최초의 수도원 파코미우스의 수도승들이 그 수도원 도서관에서 몰래 빼내 항아리에 넣어 밀봉한 다음 나중에 찾기 쉽도록 산기슭 큰 바위 밑에 있는 땅 속에 숨겨놓은 책들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1945년 12월 어느날,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나그함마디라는 곳 부근 산기슭에서 밭에다 뿌릴 퇴비를 채취하려고 땅을 파다가 땅 속에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귀신이라도 들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으나 금덩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귀신이 나오지않아 안심은 되었지만, 실망스럽게 금덩어리도 없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가죽으로 묶인 열세 뭉치의 파피루스 종이 문서 뿐이었다. 문서가 들어 잇는 그 항아리가 금으로 가득한 항아리보다 더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던 그는 단지 고문서도 골동품으로 값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 오렌지, 담배, 설탕 등과 맞바꾸었다. 그 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고문서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4세시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을 통치할 하나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를 공인하고,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다. 그에 따라 325년 니케아공의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젊은 추기경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파를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27권을 선별해 그리스도교 경전으로 정경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367년 자기의 신학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이 때 이집트에 있던 그리스도교 최초의 수도원 파코미우스의 수도승들이 그 수도원 도서관에서 몰래 빼내 항아리에 넣어 밀봉한 다음 나중에 찾기 쉽도록 산기슭 큰 바위 밑에 있는 땅 속에 숨겨놓은 책들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출처 : 하나 영성 자료실
글쓴이 : 앤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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