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는 응룡,천녀 발에게 살해 당했다ㅣ천녀 발은 하늘에서 내려온 여전사?

2022. 10. 13. 16:48신화/중국신화,일본신화,동남아신화

 

 

山海經 第十七 대황북경(大荒北經) 中.

  大荒之中. 有山名曰成都載天. 有人珥兩黃蛇. 把兩黃蛇. 名曰夸父. 后土生信. 信生夸父. 夸父不量力. 欲追日景. 逮之于禺谷. 將飮河而不足也. 將走大澤. 未至. 死于此. 應龍已殺蚩尤. 又殺夸父. 乃去南方處之. 故南方多雨.

  대황(大荒)의 가운데에 산이 있는데 이름은 성도재천(成都載天)이다. 양쪽 귀에 누른 뱀을 걸고 있으며, 양손에 누른 뱀을 잡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름을 과보(夸父)라고 했다.

  후토(后土)가 신(信)을 낳았고, 신(信)은 과보를 낳았다. 과보는 역량이 부족했다. 해(日)를 쫓아가다가 우곡(禺谷)에 이르렀다. 갈증이 나서 황하(黃河)의 물을 마셨으나 부족하여 다시 대택(大澤)으로 달려가다가 이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응용은 치우를 죽이고 다시 과보를 죽인 후 남쪽으로 가서 살았다. 그러므로 남방에는 비가 많았다.

 

  (註釋)

  珂案…蓋夸父乃古巨人族名(玄珠中國神話硏究 ABC說), 非一人之名也.

夸父逐日與應龍殺蚩尤與夸父, 蓋均有關夸父之不同神話.

 

  원가에 의하면, 과보는 고대 거인부족의 이름이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고 했다(현주의 중국신화연구 ABC설에서).

  과부축일(夸父逐日)이라는 말과 응용살치우여과보(應龍殺蚩尤與夸父)라는 말은 과보와 연관된 서로 다른 신화라고 할 수 있다..

  有係昆之山者. 有共工之臺. 射者不敢北鄕. 有人衣靑衣. 名曰黃帝女魃. 蚩尤作兵伐黃帝. 黃帝乃命應龍攻之冀州之野. 應龍畜水. 蚩尤請風伯雨師. 縱大風雨. 黃帝乃下天女曰魃. 雨止. 遂殺蚩尤. 魃不得復上. 所居不雨. 叔均言之帝. 後置之赤水之北. 叔均乃爲田祖. 魃時亡之. 所欲逐之者. 令曰. 神北行. 先除水道. 決通溝瀆.

  계곤산(係昆山)이 있다. 공공(共工)의 누대가 있는데,, 활을 쏘는 자는 감히 북쪽을 향하지 못한다.

 

  푸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황제여발(黃帝女魃)이다.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치자, 황제는 응용에게 명하여 기주(冀州)의 들에서 치우를 공격하게 했다.

  응용이 물을 모아둔 곳을 치우는 풍백과 우사에게 청하여 큰 비바람을 몰아치게 했다. 이에 황제가 천녀(天女)인 발(魃)을 내려보냈다. 발은 비를 그치게 하고 치우를 죽였으나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으므로, 그가 있는 곳에는 비가 오지 아니했다. …

  (註釋)

  珂案…太平御覽卷七十二引世本云…蚩尤作兵.

  宋衷注云…蚩尤, 神農臣, 是也, 則所謂蚩尤作兵伐黃帝者, 蓋黃炎鬪爭, 炎帝兵敗, 蚩尤奮起以與炎帝復仇也.

  원가가 살펴보자면, 태령어람 권72에서 세본(世本)을 인용하여 이르되, 치우가 병기를 만들었다. 송충(宋衷)의 주에서 이르기를, 치우는 신농씨(神農氏)의 신하(臣下)다. 라고 하는 것은 치우가 병기를 만들어 황제를 쳤는데, 대체로 황제와 염제의 싸움이다. 염제의 군사가 패하자 치우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염제(炎帝)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珂案…關於黃帝與蚩尤戰爭之神話, 古來傳說多端.

  較早者有初學記卷九引歸藏啓筮云…蚩尤出自羊水, 八肱, 八趾, 疏首, 登九淖以伐空桑, 黃帝殺之靑丘.

  其後太平御覽卷七八引龍魚河圖云 黃帝攝政前, 有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子, 造立兵仗, 刀, 戟, 大弩, 威振天下.

  誅殺無道, 不仁不慈. 萬民欲令黃帝行天子事. 黃帝仁義, 不能禁止蚩尤, 遂不敵, 乃仰天而歎, 天遣玄女下授黃帝兵信神符, 制伏蚩尤, 以制八方

蚩尤沒後, 天下復擾亂不寧, 黃帝遂畫蚩尤形象, 以威天下, 天下咸謂蚩尤不死, 八方萬邦皆爲殄服.…

 

  원가가 살펴보자면, 황제와 치우 간에 관련된 전쟁의 신화는 고래 전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초학기 9권에서 귀장계서를 인용한바에 의하면, 치우가 스스로 나온 곳은 양수(羊水)이며, 8개의 팔(뚝)과 8개의 발이 있었고, 그리고 머리를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다고 했다.

 

 구요에 올라 공상(空桑)을 치고자 했으나, 황제가 그를 청구에서 죽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 78권에서 인용한 용어하도에 의하면, 황제가 섭정하기 전에 치우가 있었는데, 형제가 81명이었다. 모두 짐승의 몸에 사람의 말을 했다.

  치우(蚩尤)는 구리로 만든 머리에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있었으며, 모래와 돌가루를 먹었다. 그리고 칼, 창, 대노(大弩)와 같은 병기를 만들어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무도했으며, 어질지도 않았고, 자비롭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황제가 천자의 일을 행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황제는 인의는 있었으나, 능히 치우를 감당할 힘이 없었고, 치우를 대적하지 못했다.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자, 하늘에서 현녀를 황제에게 보냈다. 황제는 현녀로부터 군사들에게 믿음을 주는 신부(神符:신의 진리)를 부여받고 치우(蚩尤)를 굴복시키게 되었으며, 팔방(천하)을 제압했다.

  치우가 몰락된 후에도 천하가 여전히 어지럽고 편안하지 못하자, 황제는 천하를 위압하고자 치우를 형상을 그렸다. 천하가 모두 치우가 죽지않았다고 소란하므로, (치우의 형상으로 치우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 천하를 모두 복종시키기 위함이었다.

 

御覽十五引黃帝玄玄戰法云…黃帝與蚩尤九戰九不勝. 黃帝歸於太山, 三日三夜, 霧冥.

 有一婦人, 人首鳥形, 黃帝稽首再拜伏不敢起, 婦人曰, 吾玄女也, 子欲何問. 黃帝曰, 小子欲萬戰萬勝. 受得戰法焉.…

 어람(御覽) 15권에서 인용한 황제현현전법에서 이르기를, 황제는 치우와 9번을 싸웠으나 9번 모두 이기지 못했다. 황제는 태산으로 돌아갔는데, 삼일 밤낮으로 안개가 자욱하여 어두웠다.

 

  사람의 머리에 새의 형상을 한 부인이 있었다. 황제는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고 엎드려서는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

  부인이 말했다. 나는 현녀이다. 그대는 무엇을 묻고자 하는가.

  황제가 말했다. 나는 싸움에 임할 때마다 이기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전법을 전수받았다.

  尙有御覽卷十五引志林(晉虞喜撰)云…黃帝與蚩尤戰於涿鹿之野, 蚩尤作大霧彌三日, 軍人皆惑. 黃帝乃令豊后法斗機以別四方, 遂擒蚩尤.

  通典樂典云…蚩尤氏帥魑魅以與黃帝戰於涿鹿, 帝命吹角作龍吟以禦之.

  어람 15권에서 인용한 志林(晉나라 우희 찬)에 의하면, 황제와 치우는 탁록(涿鹿)의 들에서 싸웠다. 치우가 3일 동안이나 큰 안개를 피워내자, 황제의 군인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는 이에 풍후에게 영을 내려 두기(斗機)를 만들게 하여 사방을 분별하고는 치우를 사로잡았다.

 통전 낙전에 의하면 치우씨는 이매(魑魅)를 거느리고 황제와 탁록에서 전쟁을 했다.

이매(魑魅) : 두억시니,도깨비 이승 저승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

 

황제는 영을 내려 뿔을 불게 하고 용을 불러내는 노래를 부르게 하여 막았다.

 

述異記雜敍蚩尤軼事云…蚩尤能作雲霧. 涿鹿今在冀州, 有蚩尤神, 俗云, 人身牛蹄, 四目六手.

今冀州人掘地得髑髏, 如銅鐵者, 卽蚩尤之骨也. 今有蚩尤齒, 長二寸, 堅不可碎.

술이기(述異記) 잡서(雜敍) 치우일사(蚩尤軼事)에서 이르기를, 치우는 능히 구름과 안개를 만들었다. 탁록(涿鹿)은 지금의 기주(冀州)에 있다. 치우신(蚩尤神)은 민가에서 이르기를, 사람의 몸에 소발굽이며, 눈이 4개에 손이 6개이다.

 지금의 기주 사람들이 땅을 발굴해서 유골을 파내었는데, 그 유골이 구리나 쇠처럼 단단했다. 즉 치우의 뼈라고 했다. 지금 있는 치우의 이빨은 길이가 2촌인데, 단단하여 부수어지지 않았다.

 

 秦韓間說…蚩尤氏耳鬢劍戟, 頭有角, 與軒轅鬪, 以角觝人, 人不能向.

 今冀州有樂名, 蚩尤戱, 其民兩兩三三, 頭戴牛角而相觝. 漢造角觝, 蓋其遺制也.

 太原村落間, 祭蚩尤神, 不用牛頭.

 今冀州有蚩尤川, 卽涿鹿之野.

 漢武時, 太原有蚩尤神畫見, 龜足蛇首, 抵疫, 其俗遂爲立祠.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사이의 설에 의하면, 치우씨(蚩尤氏)의 귀밑 터럭은 칼이나 창과 같다고 했으며, 머리에는 뿔이 있어 황제 헌원과 싸울 때 뿔로 사람들을 쳤으므로, 사람들은 그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지금 기주에는 치우희(蚩尤戱)라는 놀이가 있는데, 사람들이 둘둘이나 삼삼으로 머리에 소뿔을 이고 서로 찌르는 놀이이다. 한나라 때 만들어진 각저도 모두 그 유물이다.

  태원(太原) 촌락간에는 치우신에게 제사지낼 때 소머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무제(漢武帝) 때의 태원(太原)에 있는 치우신(蚩尤神)의 화상을 보면, 거북이 발에 뱀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역질을 막는다는 풍속에 따라 사당을 세워두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