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7. 02:18ㆍ신화/중국신화,일본신화,동남아신화
여와의 인류 창조
여와라는 이름은 <초사>의 천문편에 처음으로 보인다. 그런데 <천문>에서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그 질문은 “여와의 몸은 누가 만든 것일까?”라는 것이다. 이 질문은 특이한데 그 의미는 아마도 <여와가 다른 사람의 몸을 창조해 냈다면 그 여와의 몸은 또 누가 만들었을까“하는 의미일 것이다.
최초로 만들어진 중국의 자전(字典)에서는 <와>는 “<와>는 옛날의 신성한 여인으로서 만물을 창조하고 길러낸 사람이다”
천지가 개벽한 이래, 대지에는 산과 냇물이 있게 되었고 초목이 우거졌으며 새와 짐승들, 벌레와 물고기들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인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세상은 여전히 황량하고 적막하였다. 이 황량하고 고요하기만 한 땅위를 거닐던 대신(大神) 여와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고독하다고 생각하며, 천지간에 뭔가를 더 만들어넣어야 생기가 돌 것 같다고 느꼈다.
생각 끝에 여와는 몸을 굽혀 땅에서 황토를 파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과 섞어 둥글게 빚어 인형과 같은 작은 모양을 만들었다. 이것을 땅에 내려놓자 희한하게도 곧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꽥꽥 소리치며 즐겁게 뛰놀았는데 그가 곧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체구는 비록 작았으나 신이 친히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신을 닮았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나 기어다니는 짐승들과는 달리 우주를 다스릴 만한 기개가 있어보였다. 여와는 그녀 자신의 이 아름다운 창조품에 매우 만족해하며, 계속해서 손으로 물을 섞어 황토를 반죽하여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내었다. 벌거벗은 인간들은 모두 여와를 둘러싸고 뛰놀며 즐거워하다가 혼자서, 혹은 무리를 지어 흩어져 갔다.
그 모습을 보며 기쁨과 놀라움을 느낀 여와는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을 언제라도 그녀의 손에서 땅에다 내려놓을 수 있었고, 또 주위에서 인간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여와는 이제 더 이상 쓸쓸하고 고독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들어낸 자식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리하고 총명한 이 작은 생물들을 대지에 가득 차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지는 너무나 넓었다. 오랫동안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기도 전에 그녀는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일을 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여와는 줄 하나를 구해다가-아마도 절벽에 늘어져 있던 넝쿨을 손에 걸리는 대로 가져온 것이리라-진흙탕 속에 넣고는 누런 진흙물을 젹셔서 땅을 향해 한바탕 휘둘렀다.
그러자 진흙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떨어진 방울들이 모두 소리치며 즐겁게 뛰어 노는 인간으로 변하였다. 이 방법은 과연 간단했다. 줄을 한번 휘두르기만 하면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으니, 얼마 되지 않아 대지는 인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지상에 인류가 존재하게 되니, 이제 여와는 자신의 작업을 끝내도 좋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하면 인류를 계속 생존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였다. 인류는 죽어야만 하게 되어 있는데, 한 무리가 죽고 나면 새로 또 한 무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여와는 남자와 여자를 짝지워서 스스로가 그들의 자손을 만들어내고 키우는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인류는 이렇게 하여 이어져 내려와 나날이 더욱 많아지게 된 것이다.
인류를 창조한 여와
여와는 인류를 위하여 혼인제도를 만들어내었다. 남녀를 서로 짝지어 주는 인류 최초의 중매인이 되니, 후대 사람들은 여와를 고매(高媒)로 추앙하였다.고매는 신매(神媒), 즉 혼인의 신이다.
사람들이 이 혼인의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는 그 의식(儀式)이 매우 성대하였다. 교외에 제단을 쌓고 사당을 세워 <태뢰(太牢)>*의 예(돼지.소.양 등 세 가지 제물을 모두 갖춰 제사 지내는 것)로 그녀를 모셨다. 또 해마다 음력 2월이 되면 여와를 모신 사당 근처에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온 나라 안의 남녀들이 서로 만나서 즐겁게 놀도록 해주었다. 그러다가 남녀 쌍방이 서로 맞으면 별다른 의식이 필요 없이 자유롭게 결혼하여, 달과 별이 빛나는 하늘을 장막으로 삼고 푸른 풀이 깔린 대지를 침대로 삼을 수 있었으니, 누구도 그들의 행동에 간섭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일컬어 “하늘이 맺어준 짝(天作之合)”이라고 하였다. 성대한 잔치 기간 동안에는 신을 모시는 아름답고 신기한 음악과 춤이 있어서 남녀 모두가 즐겁게 실컷 놀 수 있었다. 또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다투어 사당에 찾아와 신께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빌었으므로 혼인의 신은 삼신할머니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고매를 모시는 장소는 나라마다 달랐다. 송(宋)나라는 상림(桑林:뽕나무숲/누에의 먹이)이라는 숲속에 모셨고 초(楚)나라는 운몽(雲夢)이라는 물가에 모시기도 했는데, 공통점은 모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모셨다는 점이다. 신단 위에는 보통 돌을 하나 세워놓았는데 사람들은 이 돌을 매우 공경하였다. 그것의 의미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원시시대 인류의 생식기 숭배 습속의 유풍(遺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주석 * 태뢰의 중국발음 太 [tài]牢[láo] 테라[te la]와 비슷한 발음: 여와의 중국식 다른이름이 테라(지구여신)였을 가능성 있음
여와가 인류를 창조하고 그들을 위해 혼인제도를 만든 뒤 오랫동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우주에는 갑자기 크나큰 변동이 일어났다. 신들의 나라에 무슨 변란이 생겨서였는지, 아니면 새롭게 만들어진 천지가 아직 그리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아서였는지 그 이유는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생각:아마도 유성의 지구충돌 같습니다.
하늘의 한쪽 귀퉁이가 무너져내려 보기 싫은 구멍이 크게 뚫려버렸고 땅도 가로 세로로 갈라터져 어둡고 깊은 틈이 생겼다. 이런 엄청난 변화 때문에 수풀에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산불이 일어났고 땅 속에서는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올라 홍수가 터지니 그 물길은 하늘까지 닿을 듯하여 대지는 그만 드넓은 바다처럼 변해 버렸다. 인류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때 숲속에서 뛰쳐나온 각종 맹수와 사나운 새들도 사람들을 습격했다. 세상에는 마치 한 폭의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와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들이 이런 비참한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녀는 하늘과 땅의 부서진 곳을 수리하는 힘든 작업을 시작했다. 이 일은 정말 방대하고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자애로운 인류의 어머니 여와는 그녀가 사랑하는 인간들의 행복을 위하여 힘들고 어려운 것을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게 이 중책을 짊어졌다.
여와는 우선 큰 강에서 오색 돌(구리석)들을 많이 골라내었다. 그리고 불을 피워 오색 돌을 녹여 아교 상태의 액체로 만든 후 이 액체로 보기 흉하게 뚫린 하늘의 구멍을 메웠다. 자세히 뜯어보면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멀리서 보면 원래 모습과 대체로 비슷하게 되었다. 여와는 수리를 끝내 놓은 하늘이 다시 무너질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큰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 네 발을 잘라서 그것을 하늘기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대지의 사방에 세워서 인류의 머리 위에 천막처럼 하늘을 지탱할 수 있게 하였다. 기둥은 상당히 탄탄하여 다시는 하늘이 무너질 염려가 없게 되었다.
※이 하늘의 구멍은 혹시 천국으로 알려진 신들의 사바(거대 우주함선)로 보임ㅡ인도신화 마하바라타에서는 시온이라고도 함
그런 뒤 여와는 중원(中原)에서 악명이 높던 검은 용을 죽였으며 여러 맹수와 흉조들을 쫓아내어 인류가 다시는 짐승들의 해를 입지 않게 해주었다. 또 갈대잎을 태워 재로 만들어 쌓아서 하늘까지 닿은 홍수를 막았다. 그리하여 거대한 그 재앙은 결국 위대한 여와의 손으로 평정이 되었으니, 그녀의 후손들은 마침내 죽음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여와가 숱한 고생 끝에 하늘을 수리하고 땅을 모두 평평하게 메워 재앙은 끝나게 되었다. 인류는 다시 평온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대지에도 다시 즐거움이 감돌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차례대로 돌아오니, 더워야 할 때 덥고 추워야 할 때 추워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그때에는 사나운 맹수들은 이미 죽어버렸고, 살아남은 짐승들은 점차 온순하게 변하여 인간들과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또 아무런 걱정도 없이 신나게 살아갔으니, 때로 스스로를 말이나 소라고 여길 정도였다. 들판에는 저절로 자라난 먹을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근심하거나 힘쓰지 않아도 먹을 것이 충분했다. 먹고 남은 음식물들을 길가에 그냥 놓아두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아기를 낳으면 나뭇가지 위의 새집 속에 넣어두었는데, 바람이 불면 새집이 흔들려서 마치 천연적으로 설치해 둔 요람과도 같았다. 호랑이나 표범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놀 수도 있었고, 큰 뱀의 몸뚱이를 밟아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바로 후대의 사람들이 이상적인 것으로 여겼던 태고의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여와보천
여와는 그녀의 자손들이 잘 지내는 것을 보고 매우 흡족해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또 <생황(笙簧)>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생황은 생(笙)이라고도 하며, 황(簧)은 생 안에 들어 있는 엷은 이파리 모양의 물건인데 그것이 있어서 생을 불면 소리가 나게 된다고 한다. 이 악기의 모양은 봉새의 꼬리와 같았고 13개의 대롱이 반으로 자른 조롱박 안에 꽂혀 있었다. 여와가 그것을 그녀의 자손들에게 선물로 주니, 그때부터 인간의 생활은 더욱 유쾌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위대한 여와는 창조의 여신일 뿐 아니라 음악의 여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여와가 만든 생은 지금도 중국 서남지방의 묘(苗).동족 사람들이 불고 있다. 그것은 <노생(盧笙)>이라 하는데 만드는 방법이 고대의 생황과 약간 다를 뿐이다. 고대의 생황은 조롱박(복희와 여와가 조롱박 속에 숨어 홍수를 피했다는 전설과 물론 관계가 있다)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속을 파낸 나무를 사용하고 대롱도 몇 개가 줄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옛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노생은 젊은 남녀들의 순박한 애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해마다 춘삼월이 되어 복숭아꽃과 배꽃이 피는 때, 날씨가 맑고 구름 한점 없이 달빛이 아름다운 밤을 택한다. 사람들은 밭이랑 근처 호숫가에 평평한 공터 한 군데를 미리 골라두고 그곳을 <월장(月場)>이라 칭한다. 잔칫날, 잘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월장에 모여 끊어질 듯 이어지는 듣기 좋은 소리의 노생을 불러대며 빙글빙글 돌고 노래하며 춤추는데, 그것을 <도월(跳月)>이라 한다. 그러다가 남녀 쌍방이 서로 뜻이 맞으면 손에 손을 잡고 사람들 틈을 떠나 비밀스런 곳으로 갔다. 이런 춤은 고대의 젊은 남녀들이 고매의 사당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것고 비슷했던 것이다. 생이라는 악기의 창조는 이렇게 애정, 그리고 혼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코레여신의 모자와 복식을 묘족여성들이 하고 있음
여와가 인류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작업을 끝낸 뒤 마침내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휴식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지만, 여와의 죽음은 그냥 사라져버리는 죽음이 아니라 반고처럼 우주의 다른 사물로 변화하는 것이었다.
<산해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와의 창자가 열 사람의 신인(神人)으로 변하 율광(栗廣)의 들판에 사는데, 그들의 이름을 여와의 창자[女와之腸)이라 한다"
여와의 창자가 열 사람의 신인으로 변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그녀의 몸 전체가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들로 변하였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여와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끝내고 나서 여와는 우레소리를 내는 수레[雷車]를 타고 비룡(飛龍)을 몰면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때 하얀 용이 수레의 앞에서 길을 열었으며 뒤에서는 날아다니는 뱀이 따라갔는데, 황금빛 구름이 그 수레를 감쌌고, 세상의 모든 귀신들이 수레 뒤를 요란스럽게 따라왔다고 한다. 이렇게 용을 타고 구름을 이끌고서 아홉 하늘 꼭대기까지 계속 올라가 여와는 하늘나라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여와는 천제를 뵙고 그동안 그가 했던 일을 간단하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후 여와는 하늘나라에서 조용하게 은둔자로 살아갔는데,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 하지도 않았고 또 명성을 얻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는 모든 공로를 다 대자연에 돌리고, 자시 자신은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인류를 위하여 작은 노력을 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 후손인 인간들은 "공로가 위로는 구천(九天)에, 아래로는 황천(黃泉)에 이르는", 겸손하고 위대한 인류의 어머니 여와에게 감사하며 그녀를 영원히 자신들의 가슴속에 새겨놓았던 것이다.
아스타나 묘지 여와 복희 벽화 (뱀보다는 누에에 가까운 모습이며 천 재단용 각자/먹통와 가위 같은 것을들고 있음)
이집트 전갈여신 Selket (셀켓) 여신이라고 하는데 이모습은 전갈보다 누에와 흡사
누에실로 짠 천을 영어로 silk(실크)
여와의 영문 표기 Nüwa 누와 /누에
쿠쿠트니 트리필리아의 유물 (실로 감은듯한 흙인형) BC7000년~BC4000년
쿠쿠트니 트리필리아 위치
※추가사항
태호복희와 여와는 서로 존재한 시대가 다르고 여와가 먼저 이며 후대에 이 두신은 남매가 된다고 한다.
※ 나의 생각
여와 여신 신화는 여러모로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누에는 파충류의 먹이라고 함...수천년전(BC5000년)부터 늘 쿠쿠트니 트리필리아의 유적지 우크라이나 지역은 일정 기간이 되면 전쟁의 참화나 대화재로 거의 몇명이 남지 않고 전멸하였습니다...우크라이나의 비옥한 검은땅은 이런 수천년 동안의 화재때문인가?
트리필리안 (트리는 성스러운/영어 필리는 흰암말을 뜻함/우리말 "말"을 세는단위도 필)종족은 아직도 우크라이나국민의 구성종족으로 위키페디아에 나옵니다.
여와로 알려진 여신은 누에가 아니고 그녀의 상징일뿐 천녀이니까 압사라종족(힌두교/불교의 천녀,엘프,말종족/복수는 이브스)일것입니다.
아님 다른 모습의 여신??
그녀는 자신의 태DNA(창자로도 표현)로 사람을 창조하고 아버지는 건달바가 아닐까요?
정확히는 저두 알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압사라의 연인이 건달바로 나오는데 그 또한 천신이자 말종족 남신(엘프)입니다.
사카족의 삭은 동아줄(새끼줄)을 말합니다. 색블루족라고 할때도 사카족을 색족으로 표기
1. 동아줄
2. 찾다
3. 구(求)하다
4. 구함
5. 꼬다
획수 10획 부수 糸(실사, 6획)
새끼줄은 탯줄도 됩니다. 아무래도 사카족이 이여신의 탯줄에서 태어난것 같습니다.
신화속에 새끼줄을 진흙에 담궜다고 하는데 실제로 땅의 "때/테"와 탯줄의 "태"는 발음이 비슷합니다.
예를 들면 "테라"는 땅(지구)의 여신이름인데 테가 땅을 라는 신의 호칭이라고 합니다.
고대어가 순우리말에 많으니 그것을 접목하면 땅이 "태"가 될수도 있습니다.
여차피 여와신화(누에신/직녀)도 중국것(뱀시조)이 아니니 원래 신화가 필리어 혹은 타밀어계였다면 중국인들에겐 같은 음, 같은 뜻으로 들였을것입니다.
새끼줄은 여와(중국발음:누와Nuwa)여신 자신의 DNA(염색체)가 있는 수정난이고 이 수정난을 '태'에 담아서(뱃속에 배어서?) 태어난 아이들을 사카족조상이라 해야 하나?
삭가족 삭씨족이라는 뜻으로 해석가능합니다.
새끼줄 아이종족 그러니까 탯줄아이종족이 되겠네요.
아무튼 신화를 현대과학에 접목시켜서 유추해본 것입니다.
"쿠쿠트니 트리필리안"(BC7000년~BC4000년)의 문화와 생활양식은 "가야"와 같고 모계DNA가 사카족인 "신라인유골" 등등으로 한반도는 그들의 새로운 국가의 영토가 된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한국인 체형 얼굴모습은 순수황인종으로 분류하기엔 많은 부분 서구형이기때문에 이들의 유전자를 받았기때문이 아닐까싶습니다.
이집트의 반투명한 옷을 입은 셀켓여신/ 타실리 니제르의 활을 든 나비여신/ 쿠큐트니 트리필리아 유물처럼 두상이 아주작은여인들
10000년전 동굴벽화 알제리의 "타실리 니제르"
나비여신이 여와(Nuwa) 여신?/ 건달바 같은 말귀의 남신? 아님 압사라 여신? / 금속투구를 쓴 머리에 뿔달인 남자
치우신(활)과 닮음 그리고 엄청나게 큰 거인이군요.
이정도면 신화가 아니라 인류의 지구역사가 아닐까요?
누에→나방:빗살모양의 더듬이/사카족의 독특한 머리장식/활과 화살통을 든 사카족(그리스유물)
결론: 여와 여신은 중국인시조뱀신이 아니라 누에를 상징하는 나비여신이며
"테라"라는 이름의 지구여신입니다.
인류의 최초창조자이자 사카족의 어머니이며 인류 수호신입니다.
유대인은 사카족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사카족의 시원지는 시베리아에 있습니다.
나그함마디의 "필립의 복음서"에 히브리인(유대인,사카족)들은 아비가 없다고 쓰임
"우리가 히브리인이었을 때 우리는 어머니만 있는 고아였지만,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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