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6. 21:52ㆍHistory of Korea
개천록 (開天綠)
구름 이경숙
이 개천록은 지리산의 숯굽는 노인이 가지고 있던 한권의 비서를 번역 하면서 그 열전(列傳)류의 기록들과 사건 중심의 일화체 기록을 년대순 으로 배열하여 써나간 것이다. 이 개천록은 총 3부로 이루어진 것 중에서 가운데 편이다. 1편이 선천기(先天記)로, 이것은 우주가 혼돈하던 태초로 부터 최초의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는 순간까지의 과정과 그 원리이다. 서양의 진화론이 메우지 못하고 있는 간격을 충분히 메울 정도로 과학 적 법칙을 가지고 서술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 올리기에는 내 용이 적합치 못해서 그냥 넘어 갔다. 이런 문제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지겨워서 몸이 뒤틀릴 내용이다. 나체서방님 뗑깡나오면 말리기 어렵다. 2편이 지금 올리고 있는 개천록(開天綠)이다. 이 개천록은 최초의 남녀인 나반과 아만이 천계에 나타나서 부터 신시개천을 거쳐 단군국조께서 고조선을 건국하기 까지 3만년 역사의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3편이 후천사(後天史)이다. 이것은 고조선으로 부터 고구려가 당군에 멸망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특히, 당군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함락시킬 때, 서고를 불태우므로서 어떻게 환국의 역사서들이 소실되었는지 하는 것과, 하늘의 뜻에 따라 몇 권의 비서가 누구에 의해 비밀리에 보존되면서 세상에서 사라졌는지에 대한 비화들이 나온다. 천표율사가 기술한 정감록의 바탕을 이루는 환국과 신시시대의 예언서들의 내용이 들어 있다. 先天記, 開天綠, 後天史는 아직까지도 미완이다.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많이 있다. 여기에 올리는 내용은 통신공간에 걸맞게 압축하고 골치아프고 지겨운 부분은 생략한 내용이다. 읽어봐 주시는 이상한 나라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구름을 비롯한 몇 명의 작가들의 글이 실린 이상한 나라(wonder land)라는 홈페이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더라구요.1년전인가 퍼논 구름의 글인데 잃어 버린 우리역사의 단서를 찾는데 도
움이 될 것 같아 여기 싣습니다.작년 12월(2,000년) 생긴 구름의 홈페이지에도 실려있습니다.
<운영자>
제1장 天神役事의 時代
한번 생겼다 없어지는데 천억 년이 걸리는 우주가 억만 번을 생겼다 없어지는 세월을 무량수(無量數)라 하고 또는 억겁(億劫)이라 한다. 한 겁(劫)의 세월은 집채만한 바위를 백년에 한번씩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잠자리 날개보다 더 부드러운 옷깃으로 한번씩 쓸어 마침내 닳아 모래알로 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니 억겁의 세월은 실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라 할 것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시작과 끝도 억겁의 세월 속에서는 찰나와도 같아서 생겼다 없어지기를 셀 수 없이 하였다. 그래서 옛 선인은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것이며, 끝남이 없이 끝나는 것"이라 가르쳤고(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불타 역시 갈파하여 말하되 "본래 생기지 아니하였으니 멸할 것이 없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죽을 것도 없다(不生不滅)"하였다.
세계는 본시 불생불멸하고 상주불변하는 것이라 시작이나 끝이나 시작과 끝의 사이나 그 본이 다르지 아니하여 이름을 붙일 수 없어 무(無)라 하고 허(虛)라 하지만 무에서 하나가 생겨 세계를 이루게 되니 일(一)을 가르켜 무극(無極)이라 하고 일에서 둘이 나오니 이를 음과 양이라 하고 이 둘이 하나로 돌아갈 때 태극이라 하니 일은 곧 이요 둘은 곧 하나라 이를 불이불일(不二不一)의 조화라 한다. 음양이 조화를 이룬 것이 삼이 되며 이 삼을 일러 중화(中和)라 하고 음중양 셋으로부터 만물이 생성되니 이를 사대(四大)라 한다. 사대는 곧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니 세계의 모습이다. 사대에 질서가 생기니 이를 오행(五行)이라 하고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상생상극(相生相克)하는 질서이다. 사대에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질서가 갖추어지니 비로소 세계가 온전하게 되었음이다. 그 온전함의 완성으로 나타난 것이 인간의 존재였다.
이를 옛 선인(仙人)이 남긴 천부경에 일러 "一積十拒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이라 하였다. 바로 하늘(一)의 기운이 겹겹히 쌓였는데 이것을 담을 마땅한 그릇이 없으니 인간으로 화하였다는 말이다. 만물에 충만한 기운은 대지에 생명의 싹을 틔우고 다시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늘의 상서러운 기운이 모여 마침내 첫 인간이 되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니 이 첫 인류가 살던 처음 땅을 일컬어 천계(天界)라 부른다. 천계는 간방(干方)으로 지구의 음(陽)의 극지(極地)라 능히 하늘의 정기가 모이고 쌓일 만 하였다. 그 곳이 바로 오늘날 바이칼이라 부르는 바다같이 너른 호수의 서쪽이었다.
모든 생명은 종의 한계 내에서 지속적인 진화를 계속하게 되지만 그러나 종의 점진적인 진화가 더 이상 종의 발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때 종의 벽을 뛰어넘는 도약으로서 생명은 전진을 계속해 나간다. 어류는 어류로서 진화하지만 결코 양서류로 넘어가질 못하고 양서류는 파충류로 가는 벽을 넘지 못한다. 진화의 증거인 화석에 중간형태의 생물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때문에 종이 그 자체적 진화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벽을 뛰어넘게 하는 천지자연의 대변화(大變化)가 있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개벽(開闢)'이라 말한다. 이러한 개벽은 수억 년에 걸친 생명진화의 축적된 영적 에너지가 그 원인이 되어 대자연의 기운과 맞물려 일으키는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땅위에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천지에 개벽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만년 전, 당시에 지구라는 작은 혹성 위에는 원숭이보다는 조금 발달했지만 아직 인간일 수는 없는 유인원(類人猿)들이 곳곳에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몸에는 털이 덮여있었고, 툭 튀어나온 턱과 부리부리한 눈에 손에는 돌도끼며 나무 몽둥이 같은걸 들고 뛰어 다니며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무리 지어 살고 있었다. 포유류가 그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모습이었다. 그들이 다시 한번 인간으로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자연의 에너지가 필요했고 환경적인 대변혁(大變革)이 있어야만 했다. 생명의 진화란 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개벽'이 시작되었다. 그것을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빙하기(氷河期)"라고 말한다. 약 5만년 전에 시작된 지구 최후의 "빙하기"에 수많은 유인원들-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불려지는 -이 다른 많은 동물들과 함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이것은 개벽을 통해 진화의 벽을 뛰어 넘기 위해서 생물계가 치르게 된 피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온 지구가 얼음에 뒤덮이고 살인적인 혹한이 모든 땅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빙하와 추위에 쫓겨 사슴과 순록과 말과 양들이 사라져 가는 초원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이동해 갔으며, 이동속도가 느린 동물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가야 했다. 북극으로부터 적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지에는 동물들의 시체가 깔리고 그 위를 백색의 눈이 두텁게 덮어 버렸다.
유인원들도 마찬가지 였다.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무리들은 얼어죽거나 아니면 빙하 속에서 살아 남거나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이 가혹한 대자연의 시련 속에서 일단의 유인원들이 그 혹독한 환경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수 억만년 동안 생명이 진화해 오면서 그 내면에 축적해 온 모든 생존능력과 잠재력을 총동원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지혜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빙하에 갇힌 유인원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불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어렵게 잡은 동물이나 각종 과실을 오랜 동안 보존하기 위하여 그릇을 만들거나 가축으로 사육하게 되었으며 열악한 환경은 그들에게 보다 많은 도구의 필요성을 심어 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2만년의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상의 곳곳에 찬란한 태양이 그 옛날의 따뜻한 햇살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눈속에 파묻혀 개벽의 시련을 견뎌낸 소수의 유인원들이 다시금 푸르러진 초원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들은 2만년전 개벽이 시작될 때의 그 유인원들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더욱 갸름해지고 다듬어진 것이 되었고, 훨씬 더 곧은 자세로 일어서서 걸어다녔으며, 빙하기의 생존을 통해 체득한 발달된 커무니케이션 수단을 갖고 있었다. 즉 말을 할줄 아는 최초의 동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인간이었고 이들의 모습이 나타 났을 때 옥황상제께서도 크게 기뻐하셨다. 천상의 모든 신들이 그들을 축복했다. 상계에서는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두 남녀를 골라 "나반"과 "아만"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최초에 이 인간들은 그 지혜의 빛이 그 이전의 모든 동물들 보다 탁월한 정도에 이르긴 했지만 아직 그 능력이 불완전하고 그 생명력도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우주 대자연의 궁극적 목적이랄 수 있는 완전한 지혜의 존재 - 신의 변환체로서의 생명이 될 소중한 싹을 보호하여 주기 위해서 천상에서는 진지한 회의가 열렸다. 하늘님이 직접 지상에 내려 가서 이들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것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아직 까지는 인간이 그 지혜의 문이 완전히 열려 있지 않고 이전의 동물이었던 단계의 야성과 우매함이 남아 있어 하늘의 교화를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고 여겨졌다. 결국 천상의 회의는 이 초기 단계의 인간을 보호할 네 마리의 신령한 동 물을 대신 보내는 것으로 결정지어 졌는데 이 신령물들이 바로 우리민족의 수호신인 용,봉,맥,호의 4신수였다. 이들은 각각 천상의 일주기인 삼천년씩 지상에 내려와 자연적 재해와 질병, 수환(獸患)등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게 되었는데 이들 중 가장 먼저 지상에 내려온 것이 용(龍)이었다. 용이 2만년전 지상에 내려와 삼천년을 거하다가 이윽고 그 기한이 차매 천계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때 비늘 하나를 인간들에게 떨어 뜨려주었는데 이것이 거울로 화했다. 이 용의 비늘이 변하여 거울이 된것을 "용경(龍鏡 )"이라고 하는데 훗날 환인이 이 용경의 뒷면에 "천부경(天符經)"을 새겨 커다란 가르침으로 삼게 되었다. 용이 돌아간 후, 다음 삼천년을 봉황(鳳凰)이 왔는데 이 봉황은 항상 암 수가 같이 다니는 신조(神鳥)였다. 그 숫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하는데 이 황이 천계로 돌아 가는 날 그 깃털 하나를 남겼다. 황의 깃털은 양쪽으로 가지가 세개씩 나 있는 형상인데, 이것이 그대로 칼로 변해 사람들이 "황검(凰劒)"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훗날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도 먼 옛날 환국시대의 신표였던 "황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었다. 그 다음에 온 것이 "맥(貊)"이었는데, 이 맥은 코끼리와 돼지를 합친 것 처럼 못생긴 짐승이었지만 사람에게 해로운 독초와 독충을 샅샅이 잡아 먹는 신통력을 가져서 해충과 독으로 부터 인간을 구제하는 신물이었고 이 맥이 삼천년을 다한 후 천계로 돌아갈 때 허물을 벗어서 가죽을 남겼다. 이 맥이 남긴 가죽으로 사람들이 큰 북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맥고(貊鼓 )"라 한다. 훗날 신시개천 때 환웅이 환인에게 물려받는 천부인 세개가 바로 이 "용 경(거울)","황검(칼)","맥고(북)"의 세가지 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상에 내려온 신수가 바로 "백호(白虎)"였는데, 이 백호가 삼천년을 거의 채워갈 무렵, 그러니까 최초의 인간인 나반과 아만이 생겨 난 이래 일만이천년이 흐른 즈음 인간은 그 수가 점점 불어 났고 유치한 단계이긴 했지만 문명이란 것이 그 원시적인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천계 주위엔 여러 마을이 생겼고 사냥과 더불어 초보적인 농사가 시작되 어 조,옥수수,콩,깨 등을 심었고 개와 돼지 닭들을 가두어 놓고 길렀으며, 움집이란 거주형태도 조금씩 발달하여 온돌과 비슷한 구조의 난방도 하고 살게 되었다. 그 일만이천년 동안 지구의 환경도 조금씩 바뀌었고 빙하가 물러 간 후 따뜻한 초원지대였던 천계의 일대가 점차 추어지기 시작해서 오늘날 의 시베리아 기후대에 속하는 지역으로 바뀌어 갔다. 조금씩 여름이 짧아 지고 겨울이 길어졌으며, 겨울의 바람은 갈수록 매서워져 갔다. 많은 동 물들이 남쪽으로 사라져 가고 겨울이면 사냥할 동물을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이때의 상황을 우리의 옛 역사서인 "환단고기"에는 사람은 많고 생산은 줄어 갈수록 천계의 백성이 살기에 어려워 지므로..." 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나라 여러 신들이 의논해서 지상에 내려가 있는 백호에게 지시하기를, 삼천년이 끝나는 날 백호는 천상으로 돌아오지 말고 훗날 천계가 더이상 사람이 살기에 힘든 땅이 되었을 때 천계의 백성이 이주해 갈 땅을 찾아 가서 그 표식을 남기도록 하였다. 앞의 세 신수들이 모두 하나씩의 신표를 남긴 반면에 백호는 그 대신 천계를 떠난 후 훗날 천계의 사람들이 세세토록 살아갈 땅을 찾아 해뜨는 곳 동쪽으로 달려 갔지요. 마침내 동쪽 땅의 끝에 다달은 백호가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땅으로 변했는데, 그 땅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이땅의 모양이 토끼의 형상이라고 비하 시켜 주입시킨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토끼모양의 땅이라고 생각들 하지 마는 이 땅은 영락 없이 백호가 두 앞발로 대륙을 부여 잡은 형상을 하고 있다.
백호가 동쪽으로 떠나간 후 천계의 사람들 기억 속에는 하늘이 백호를 보내어 미리 준비시킨 신의 땅에 대한 전설이 남게 되었고,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잊혀지지 않고 전해져 갔다. 전설로 전해져 온 그 약속의 땅, 신의 땅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천계의 땅이 좁고 척박해 지면 사람들이 찾아갈 하늘 백성의 땅은... 물을 건너지 않고는 그 땅을 밟을 수 없으니 섬은 섬이나 섬이 아니고, 이 세상의 가장 큰 땅(구름 주:유라시아 대륙)과 가장 큰 물(구름 주:태평양)의 중앙에 있으며, 가장 추운 곳과 가장 더운 곳의 한 가운데라 춥지도 덥지도 않아 4계절이 모두 있으며, 이 세상의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이 그 땅에서 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구름 주:한반도는 없는 것이 없어 광물의 박물관으로 불린다. 아마 석유도 곧 발견될거다. 그 땅의 형상은 백호의 형상이 그대로 변한 것이라 이세상에 유일하게 그 모양이 자연히 생긴 땅이 아니며, 그 땅의 물은 이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며, 땅은 기름지고 산수는 수려해서 금수강산이라 불리우며, 훗날 있을 마지막 개벽의 시대에 이 세계의 모든 밝은 기운이 그리로 모일 것이니라. 하는 내용이었다. 그 땅을 찾아 갈 시기와 그 땅의 표식에 대해서는 대대로 환인만이 그 비밀을 알고 계셨다. 백호가 동해바다로 떠날 즈음 이제 인간의 인지(認智)가 발달하고 그 영적인 능력이 능히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끼리 위함(敬天愛人)이 가능한 정도가 되매 비로소 천상의 하늘님이 지상의 인간을 친히 보살필만 하게 되었다. 때에 하늘의 상제가 지상에 나리셔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桓國), 즉 하늘나라(한:하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분을 "안파견" 또는 "한님(하늘님)으로 불렀고 훗날 한자로 표기 할 때 환인(桓因)이라 하였다. 환인은 하늘의 상제가 그 자리를 바꾸어 지상에 오신 것이니 인간처럼 정해진 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천상으로 돌아 가고 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내려 오시니 첫번째 한님이신 안파견으로부터 마지막 환인이신 지위리 까지 7대 3천년을 역사하시니 이 시대를 천신역사(天神役史)의 시대라고 한다. 4신수(四神獸)의 시대 일만이천년 동안 사람들은 천계를 중심으로 이 지구상의 곳곳으로 퍼져 나갔는데, 당시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알라스카가 연결되어 있어 동쪽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은 알라스카를 지나 북미로 들어 갔으며 (구름 주:당시의 알라스카는 오늘날 처럼 만년설에 뒤덮인 상태가 아니었음, 그리고 에스키모인들은 우리 한국사람들과 외모로 봤을 때 전혀 차이가 없어 구별할 수가 없음, 오히려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과 한국인은 약간의 구별이 됨, 아메리카 인디언 역시 우리와 혈통과 언어가 거의 유사 함) 남쪽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은대흥안령 산맥을 넘어 황화 유역에 다달았고 서쪽으로는 몽고의 초원과 고비 사막을 넘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까지 그 발길이 닿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세계 각지에는 빙하시대에 따뜻했던 몇몇 지역에서 변화되지 않고 살아 남은 마지막 유인원들(네안데르탈인)들이 아직도 군집해서 살고 있었으므로 인류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이들과의 충돌을 야기시켰고 보다 발달한 그들의 사촌인 인류에 의해 유인원들은 그 주거지에서 쫓겨나 멸절 되어가 (구름 주:고고학적 발굴의 근거와 인류학의 발달은 네안데르탈인으로 부터 인류가 진화한 것이 아니라 빙하기의 말에 갑자기 나타난 인류에 의해서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되었다는 것을 밝혀지게 되었고 이것이 인류 학의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 사촌간인 유인원과 인류와의 사이에 통혼이 이루어 지기도 하였으므로 진화의 벽을 뛰어 넘은 인류의 핏속에 그 이전 단계의 동물인 유인원의 피가 섞이면서 인류는 복잡한 분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 안파견께서 천계에 내려 오신 것이 지금으로 부터 9천년전 그러니까 서력으로 치면 B.C. 7000년 경의 때였다. 그때 인간들은 신석기 시대의 후기에 접어들고 있었는데 천계의 사람들은 밑바닥이 뾰족하고 무늬가 없는 그릇들을 손으로 빚어 만들어 사용할 줄 알았고 천해(天海 : 바이칼호)의 가장자리에서 조개를 줍기도 하고 생선 가시로 만든 낚시로 고기를 잡기도 했다. 물론 남자들의 주된 일은 사냥이었다. 그때 까지도 사람들은 옷으로 앞을 가릴 줄을 몰랐으므로 안파견께서 처음 지상으로 오신 후에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앞을 가릴 옷을 찾는 것이었다. 천제의 체통이 있지. 벌거벗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천제환인께서 풀잎을 덩굴로 엮어 허리에 둘렀다. 그때의 안파견의 모습은 오늘날 아프리카의 추장님과 비슷했을 것이다. 안파견께서 자신이 하신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으라 하시고 당시의 사람들이 두려워 하던 번개와 바람과 비를 설명하여 안심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먹기 전에 자신에게 보이라 하셔서 독있는 식물과 먹어도 좋은 열매를 일일이 가리어 가르쳐 주셨고, 과일을 먹은 후 씨를 뿌리면 그 자리에 똑 같은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천계의 주위에 사람을 괴롭히던 호랑이며 늑대며 승냥이들이 천제께서 오신 후로 사람사는 마을 주위에 접근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들판에 버려 짐승들의 밥이 되던 것을 그러지 말라 하시고 장사 지내는 법을 가르쳤고, 봄,여름,가을,겨울이 순환하는 것과 낮과 밤이 되풀이 되는 것을 이치로서 가르쳐 때가 되면 양식을 준비하고 불을 간수하 며 그 주거지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환인천제를 숭앙하고 진심으로 따르며 복속하여 점차로 사람이 동물과 다른 구별들이 지어져 갔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줏어오고 흙을 이개어 환인천제께서 거하실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은 마당에 천해 주위의 청석을 깔고 지붕위에는 사철 푸른잎 으로 덩굴을 놓아 햇빛과 비를 가렸고 벽에는 풀잎을 짠 액을 발라 칠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세가지 푸른 색의 궁이라 하여 삼청궁이라 불렀다. 물론 환국이 번창하면서 역대 환인들께서 개수를 거듭하여 환국말기에는 궁궐로서 손색이 없는 건물이 되었지만 안파견 환인 시대의 삼청궁은 요즘 시골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초가집과 같았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인류 최초로 지붕을 얹고 칠을 한 건물이었다. 동굴과 움집밖에 만들줄 몰랐던 당시의 사람들은 완성된 삼청궁을 시골노인이 63빌딩을 쳐다 보듯 하였던 것이다. 삼청궁이 완성되자 그 마당에 환인께서 지석(솟대)을 세우시고 그 둘레에 사람들이 모이게 하신 다음 과일과 곡식을 올리고 처음으로 하늘에 제를 올렸다. 인류 최초로 하늘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지던 날, 천계의 사람들은 나무등 걸(당시의 유일했던 타악기)을 동물의 뼈다귀로 두들기며 서로 손을 잡고 지석의 둘레를 돌며 춤을 추었어요. 노래(라기 보다도 동시에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는)도 불렀지요. 오늘날 우리민족의 춤 강강수월래의 풍속도 환국시절 부터 솟대의 둘레를 돌며 춤추던 것의 전승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일만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춤인 것이다. 그 후 부터 남자들은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잡아오면 삼청궁 마당에 모아 놓고 의례히 제를 올리고 사냥을 도와준 하늘에 감사했고, 여자들은 과일을 따오면 역시 솟대 앞에 모아 놓고 풍성한 과실을 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올렸다. 내가 앞글에서 첫 환인이셨던 안파견을 아프리카의 추장 비슷한 모습으로 말씀드렸는데 천지의 이치와 섭리를 두루 아시고 하늘과 땅의 일을 자유로 자재하시는 환인을 추장 처럼 묘사한 것이 불손한 것 같지만 환인께서는 어디까지나 그 당시의 사람들을 교화하러 오셨으므로 그 가르침과 보여 주심의 범위가 당시 인간들의 사유능력의 한계를 벗어 나지 않는 것이었을 뿐이다. 인간의 탄생은 결국 이 우주의 존재목적이요 그 의의이며 인간이 바로 우주와 같은 동본의 이상(同本異象)이므로 개벽 이후 인간이 태어나자 온 우주 가 이 자신의 인식자요 자신의 사유자로서 우주자체의 존재에 그 의미를 갖 게하는 - 따라서 무량억겁의 세월 동안 우주가 준비한 끝에 탄생시킨 축소 된 우주자체 - 이 인간을 보호하고 아직 까지 어리고 갸날픈 생명력을 유지 시키기 위해서 섭리의 인화로 환인이 오신 것이라 그 분은 기꺼이 초의에 목우에 거하면서 인간사를 보살피셨던 것이다.
천제가 오실 때에 천상에서 사신수가 인화(人化)하여 따라 왔는데 이들이 바로 이사(二師),이백(二佰)으로 우사(雨師)와 운사(雲師), 그리고 풍백(風 伯)과 하백(河伯)이었다. 이들이 천제를 도와 바람과 구름과 비와 하천을 다스려 천계의 백성들을 번창케 하였다. 그리고 이 이사, 이백은 대대로 천계에서 환인을 보좌하는 환국의 최고 벼슬이 되었는데 이것은 마지막 지위리 환인 때 까지 이어졌다. 지위리 환인이 환웅에게 천부인 세개를 넘겨 줄때 이를 봉립 하여 나갔던 풍백과 우사, 운사 중, 운사가 당시에 천계에서 이 구름과 백년가약을 맺었던 낭군이신 "초성군"이시다. 내 가 아이디로 CLOUDS(구름)를 쓰는 이유가 전생에 운사의 아 내였기 때문이다. 이때 구름이 초성군과의 사이에서 나은 아들이 이 개천록의 주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믿거나 말거나~ 초기에 인간들은 환인을 비롯한 온 우주의 기운이 그들을 보호하고 개벽 이후 첫 인류로서 그 지혜와 기운이 청정하였으므로 그 이전의 어떠한 동물들 보다도 빠른 시간내에 그 수가 불어갔고 또 그 행동 반경이 넓어져 갔다. 모험심에 충만된 인간의 무리가 더 짐승들이 많은 사냥터를 찾아 갔다가 그곳에 정착하여 가족을 형성하였고 더 맑은 물과 고기가 많은 강가를 찾아 멀리 떠나 갔다. 천계를 떠나 버린 이들은 언제 까지도 돌아 오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자손손 전인미답의 땅을 지나 아득한 대지의 저편 너머로 사라져 갔다. 물론 천계 주변엔 다른 곳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가족 단위로 모여 살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고 그 흩어진 땅의 넓이가 확대되자 사람들은 때 마다 삼청궁으로 모이기가 어려워 졌고 점차 마을 마다 그 한가운데에 하늘에 제사하는 터를 마련했고 무리들 중에 하늘의 뜻을 아는 사람을 뽑아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으례히 삼청궁에 와서 환인께 배례하고 그 가르침을 얻어 갔다. 안파견께서 오백수를 다하실 동안 사람들은 많이 개화되고 그 지혜가 밝아져 원시적인 경작을 하게 되었고 움집은 점차 벽과 지붕이라는 개념을 가진 귀틀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수렵은 여전히 주된 생업이었으나 이 시기에 돼지와 닭이 비로소 사람의 마을에서 길러지는 가축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날고기를 먹었지만 풍백이 이들에게 고기를 익혀먹는 법을 가르쳤고 하백이 짐승을 사로 잡는 법을 가르쳤다. 사람들이 파 놓은 함정에 맷돼지며 사슴들이 빠져서 산채로 잡혔고 막힌 계곡에 말이 나 소떼를 몰아 넣고 그 입구를 나무울타리로 막아 수백마리의 짐승들을 한꺼번에 포획할수도 있을 만큼 지혜가 발달해 갔다. 마침내 안파견께서 그 수를 다하시니 모습을 달리 한 "혁서환인(赫胥桓因 )"께서 삼청궁의 역사를 물려 받으셨다. 때에 이 지구에는 커다란 지각의 변동과 기후의 일변이 있었다. 세계 곳 곳에 엄청난 홍수가 있었고 대륙이 지구의 태반을 덮고 있던 얼음들이 따뜻해진 기후에 녹아 내리면서 전 세계의 해수면이 높아져서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베링해협으로 끊어졌고 대서양의 물이 지브랄탈의 방벽을 넘어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 오면서 여러 원시 문명을 수장시키고 지중해가 생겼다. 호주와 아시아의 남쪽을 이어주던 기다란 육지는 바다에 잠겨 곳곳에 섬으로 남으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문명세계의 바깥에 남겨 버렸다. 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혁서천제가 주관하시므로서 인류의 탄생을 있게 한 개벽을 마무리 지으셨다.
원래 이 세계는 태극에서 출발해서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극상생으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그 어느 하나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는 법이다. 생(生)이 없는 명(明)이 없고, 귀(鬼)가 있어야 신(神)이 있으며, 혼(魂)과 백(魄)이 같이 있어야 영혼이 살고 땅이 없는데 하늘이 있을 수 없고 양기가 일면 음기가 같이 동하는 법이다. 따라서 개벽 이후에 이 우주의 모든 양기의 정수(情隨)가 천계에 모여 인간을 만들 때 이 지구의 음의 극지인 숙방(肅方)에는 이 음기의 진수(眞隨)가 서리었고 그 기운이 역시 인간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양의 극지인 천계가 <커다란 땅에 둘러 싸인 작은 물>이었는데 반해 음의 극지인 숙방은 <큰물에 둘러 싸인 작은 땅>이었다. 물론 그 위치는 천계의 정 반대편에 있었다. 대서양의 한 복판에 있던 땅에서 발생한 이 음의 인류는 비슷한 시기에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동쪽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은 후 수천년을 이어 북상해서 마침내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이르렀고 (아직 지중해에 바닷물이 들어 차기 전에 - 지금 지중해의 바닥에는 고대문명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음) 서쪽으로는 남미의 천연림 속으로 사라져 갔 는데 이들이 훗날 마야와 잉카의 문명을 일으키게 된다. 즉 지금 인류학이 약 3만년 전에 발생한 두개의 원초인류로 보는 북방인류(황인종)가 우리의 조상들인 밝달족이요, 남방인류(흑인종)라 부르는 니그로가 바로 이음의 인류이다. 양과 음의 두 극지에서 발생해서 동시에 전세계로 퍼져 나간 이 두 인류 는 이만년이 흐른 후 최초로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에 이 두 원초 인류간에 벌어졌던 대 투쟁의 서사시가 바로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이야기이다. 지중해를 건너 그리이스에 정착했던 남방인류와 서남아시아를 지나 중근 동에 도달한 환족(桓族)이 세운 국가인 독로국 (구름 주 : 지금의 터키다. 터키의 고언어와 우리말은 그 체계상 아주 유사하다.)과의 싸움이 바로 그 것이었다. 환국십이연방의 하나인 독로국이 바로 용장 헥토르가 아킬레스 와 싸웠던 트로이의 한자표기이다. 음의 인류인 그리이스의 군대는 수십년의 원정에도 불구하고 독로국을 이기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거짓 항복하므로써 트로이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그 독로국의 이웃에는 그리이스 보다 훨씬 강성했던 수밀이국이 있어(구름 주 : 이수밀이 국은 역시 슈메르의 한자표기다.) 이의 동진을 저지 했다. (이 그리스와 독로국의 싸움에 대해서는 뒤에 상세히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훨씬 후대의 일로써 제 5대 환인이신 석제임 시절의 일이었다. 이 두 원초인류가 하나는 북에서 남으로 다른 하나는 남에서 북으로 그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처음에는 곳곳에 남아 있던 유인원들과의 싸 움이 계속되었으나 결국에는 두 발상지의 중간인 중근동에서 맞딱뜨려지게 되었다. 이것이 양대 인류가 부딪힌 최초의 격돌이자 이문명간의 대 충돌이었다. 이 독로국과 그리이스간의 전쟁이 있기 2,000년 전인 혁서천제의 시절에 그 유명한 대홍수가 있었고, (구름 주 : 비도 물론 그 원인이었지만 빙하기의 얼음이 녹아 내린 홍수였음) 급격한 지각의 변동이 뒤따라 음의 인류의 발상지 였던 숙방이 물속에 가라 앉아 플라톤의 국가에서 언급한 아티란티스의 전설이 남았고 길마메쉬 서사시를 비롯한 고대문명이 남긴 많은 기록 속에 당시의 홍수와 지진, 화산의 폭발 등이 남게 되었다.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이 때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다가 정리된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확산과정에서 유인원들과 양대 인류가 통교하게 되고 혼혈이 섞이면서 수 많은 인종이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오늘날의 백 인종이 등장하게 된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백인은 원초 인류인 뿌리가 아니라 훨씬 후대에 나타나는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미개한 유인원들의 피가 섞이면서 백인들에게는 태초의 순수한 하늘의 정기가 둔화되고 그 육체와 심성 속에 야만과 동물적인 우둔함이 심어졌다. 그들의 하얀 피부는 이종간의 교배에 의한 변종으로서 돌연변이에 가깝고, 그 크고 높은 코는 입 보다 코를 먼저 갖다대는 짐승들의 흔적이며 몸에 덮인 노란 털들과, 금 발의 머리들 역시 동물의 털로서의 흔적이며, 여러가지 습성들 역시 동물적인 것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된다. 지금 까지의 모든 인류사는 이 원초적인 양대 인류 간의 투쟁과 화합의 기록이며, 음과 양의 서로 다른 기질에 따른 문화와 문명과 종교의 성격이 다른데서 오는 격돌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중 한쪽의 정통인류라 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이 이 전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지, 어떤 존재 의의를 갖고 있는지, 앞으로의 미래세에 이 적통인류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이 예정되어 있는지, 이런 것들이 내가 할 이야기의 주된 내용들이다. ♥ 앞에서 내가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이야기를 했는데 지위리 환인 의 시대에 사람에게 회자되던 옛 영웅들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독로국의 왕자 혁도 (이 혁도왕자를 옛 희랍인들은 자기네 발음 으로 혁또르-->헥또르-->헥토르로 꼬부려 부른거다) 의 영웅담이 포함된 환국삼웅전이 단연 백미였다. 호머의 일리야드 오딧세 이는 그 장대함과 영웅적 서사미에 있어서 따라 오지 못한다. 이 환국삼웅전도 옛문자를 풀어서 한번 올려 드리겠다. 환국시대 처녀들은 어른들이 혁도왕자의 이야기만 해 주면 가슴을 조리며 재미 있어 했던 이야기다. 까마득한 옛날에 독로국에 혁도왕자가 있었고, 수밀이국에 해수 왕자가 있었으며 파내류국에 진오왕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환국 삼웅이라 혁도왕자가 머나먼 서쪽 나라의 어여쁜 혜련공주 (慧蓮 公主 : 그리스인들은 헬렌이라고 부른다)를 사모하여 ... 하고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연방기 독로국편과, 수밀이국편, 파내류 편 등의 정사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고 과장되기도 했지만 오늘 날의 사람들이 단군신화를 듣는 것 보다는 훨씬 사실적인 선대의 역사요 영웅담들이었다. 일리아드 오딧세이는 희랍인들이 그들의 참담한 패배를 미화 시키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라 오히려 그리이스의 용장,영웅들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고, 그 내용도 우리쪽의 기록과는 상당히 다른데 실제로 그들의 원정은 참담한 패전의 연속이었고 혁도, 아부,어과율,사라문두 등 독로국의 쟁쟁한 영웅들 손에 수만명 이 희생되고 그들이 돌아갈 때 배위에는 시체만이 가득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희랍에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녀자들의 곡성이 천지에 가득했고, 전사자들의 시체를 실은 검은 깃발을 매단 배가 돌아올 때 마다 해변가에는 통곡소리가 파도를 잠재울 정도였다고 전한다.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우리 쪽 이야기가 바로 "환국삼웅전의 혁도왕자편"이다. 들려드릴 때가 있을 것이다
혁세천제께서 그 수를 다하고 천상으로 돌아가실 때 천제께 아홉명의 아들이 있어 그 첫아드님이 삼신의 영기를 받아 그 덕이 산과 같고 그 지혜가 바다와 같이 깊으시므로 삼청궁에서 제위를 물려받으시니 이를 고시리 천제라 하였고, 나머지 여덟분의 형제가 당시에 천계를 중심으로 사방 이천리에 퍼져 있던 환국의 제 부족들을 각각 여덟씩을 맡아 나누어 다스리시니 구환 (九桓)이라 하고 그 아홉형제분들을 구황(九皇)이라 하여 당시의 환국을 구환64민(九桓六十四民), 또는 구황64민(九皇六十四民)이라 하였고 이 64민의 씨족이 각기 아홉형제 분의 성을 따랐으므로 천하에 9본 64성씨가 생겼다. 이 구황이 훗날 석제임 환인 대에 열두개의 분국으로 나뉘어서 환국12연방 이 되었다. 혁서제가 고시리께 위를 물리실 때에 처음으로 이 우주만물의 원리와 세상의 이치와 삼신의 도를 담은 계송을 불러 내려주시니 고시리께서 한번 듣고 다 외워 길이 전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천부경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문자가 없어 글로 담지 못하고 다만 말로써 암송되어 전해 지다가 훗날 지위리환인께서 옛 부터 삼청궁의 비처에 소장되어 있던 용경 의 뒷면에 전자로 그 뜻을 새겨 환웅께 물려 주셨다. 후일 환웅께서 신시를 여시고 백두산 중턱에 용경에 전자(篆字)자로 씌여 있던 이경을 가림토(한글의 창제시 그 바탕이 되었던 우리의 옛글)로 새긴 석비를 세우셨는데, 고조선대에 이르러 여러 곳에 비가 세워지고 경이 전해 졌으며 낙랑시대에 까지도 비가 남아 있었다 전한다. 고구려 멸망 후 사람들이 이를 해독치 못하여 괴이한 비로 여기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당대의 석학이었던 최치원이 이를 해독하여 여든한글자의 한자로 번역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고시리 천제께서 선제로 부터 천부경을 받고 이를 근본으로 삼아 우주자 연의 법칙을 깨닫고 그 원리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리시니 그 모양이 커다란 하나의 원 속에 삼극이 서로 조화하여 어우러진 것이었다. 이 그림이 바로 태극의 형상으로 정해져 삼청태극이라 했다. ♣ 이 태극이란 것은 주역과 음양오행의 중심이 되는 것인데 주역의 발상국이라 하는 중국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우리나라는 이것으로 국기(國旗)로 삼고 있다. 조선시대 까지도 격식을 갖춘 양가집의 대문에는 이 삼청 태극이 그려져 있었는데 현재 태극기에 그려지고 있는 것은 이청태극이다. ♣ 고시리 천제의 대에 와서 흙을 이개어 말린 후 불에 구어 벽돌을 만들줄 알게 되었고, 기와를 서로 이어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을 얹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에 삼청궁을 크게 개축하여 천제께서 방위를 잡고 삼청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전각을 세우므로, 이때부터 삼청궁의 의미는 태극의 세기운을 일컬는 삼청의 궁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훗날 모든 도교의 사원을 삼청궁이라 하고, 도교가 번창했던 송,원 시절 궁전이나 대궐에는 반드시 삼청전이 따로 있게 되었다. 삼청은 곧 삼신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삼신각이라 하고,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다음에도 이 태극사상을 받아들여 절 마다 삼신각을 두게 되었다. (삼신각은 원래의 불교에는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제외한 어떠한 나라의 불교 사원에도 삼신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시리 천제의 재임 중에 사람들은 비로소 씨족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했고 점차로 몇개의 씨족들이 그 근거지를 중심으로 부족으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볼때에는 이제 인류의 발길이 지구의 곳곳에 닿아 무리의 수가 많아진 곳에서는 비로소 훗날 그 흔적이 발견될 수 있을 만한 규모와 수준의 문명을 일으키게 되었어요. 물론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하면 천계 주위의 환국문명과 혁서제 시절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이전의 아틸란티스 문명이 되겠지만 그 두 문명의 흔적이 하나는 그 이후 역사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외지가 되었고, 또 한 문명은 바다 밑에 잠기어 버려 그 자취가 전해지지 않으므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발자취는 현재 까지 발견된 것보다 앞으로 발견될 것들이 훨씬 많으므로 머지 않아 두 문명의 흔적들이 발굴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고대의 유물들이 발굴되고 발견될수록 인류의 역사는 점점 더 오랜 이전으로 소급해가고 있다. 이십년 전만 해도 인류문명의 발상지로서 황화,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를 들어 사대문명의 발상지 어쩌고 가르쳤지만 슈메르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이후 오늘날은 이 사대문명만을 인류문명의 시작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독로국(트로이)의 유적은 이미 찾았지만 그 흔적이 너무 미약해 당시의 일들을 밝히기가 어렵고 아틀란티스의 유적에 대한 조사도 한참 진행 중이다. 언젠가 환국문명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날 인류사는 근본적인 수정을 하게될 것이다. 평양이 불타던 날 사라진 많은 고대의 역사서들이 하나씩 나타나게 되면서 동양사의 근본이 바뀔 것이다.
고시리 천제의 대에 씨족단위의 부락을 이루어 공동사회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인류는 그 이전의 원시공동 사회에서는 있지 않았던 재산의 사유가 생겨 났고 비로소 내것과 네것의 구별이 생겼다. 나와 남을 구별하고 내것과 네것을 가르게 된 다음 부터 내것을 늘리기 위한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은 내것을 위해 남의 것을 바라는 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한 욕망의 시발은 식량과 재산과 같은 경제적인 필요품이 아니라 바로 이성에 대한 권리의 주장에서 부터 먼저 나타났다. 이전의 공동사회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의식이 희박했으므로 자연히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 만을 기억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서로의 경계가 좁아지면서 부 터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사냥터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인간은 비로소 자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바로 자신과 같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점차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동료로 삼아 그들 상호간의 믿음과 협조를 통해 생존을 확보해 나가게 되었 다. 그러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혈연적인 관계에 의한 친족들일 수 밖에 없었으므로 자신의 보호세력을 필요로 하면서 비로소 남자들은 여자를 통해서 아이들과의 유대를 주장하여 자신의 세력을 만들게 되었다. 즉 너는 내 아들이므로 내가 적과 싸울 때 나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게 된것이고 그 때 부터는 아버지가 누구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남자는 자신의 세력으로써 가족의 수가 대단히 중요하다는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서 자신의 세력 (즉 생존능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점차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남자들 간에 벌어졌고 이것은 때때 로 씨족과 씨족간의 대규모 다툼의 성격으로 발전했다. 자신들의 숫자를 늘리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자를 통한 생산과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자신의 세력속에 편입시키는 두가지 뿐이었다. 따라서 이웃 씨족을 힘으로 굴복시켜서 그 구성원들을 데려오면 자연적인 방법에 의한것 보다 훨씬 빠르고 용이하게 그 세력 (사람의 수)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럴 수록 더욱 생존에 유리하게 됨을 알게 되면서 인간들은 서로간에 정복을 위 한 투쟁을 하게 되었고, 그 투쟁의 제일의적인 목적은 여자의 획득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집단 끼리의 투쟁은 고시리천제의 시대에 와서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아 갔고 동시에 인류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 왔다. 즉 인류라는 종의 폭발적인 확대 재생산에 그 불이 당겨졌고 그 이후로 이 종의 증가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은 자연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혁서천제의 시대에 지구의 환경적인 변혁이 이루어 졌다면 고시리 천제의 대에 와서 비로소 인간사회의 대변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혁서제 시대의 무위(無僞)로서의 다스림이 더 이상 곤란해 졌으므로 고시리천제의 대에 처음으로 규범이란 것을 정하여 이 영물들의 행동을 타율로 규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대한 생명계의 진화와 그 결실로의 전진을 천제께서 막으실 생각은 없었지만 최소한 이 인간들이 보다 더 원숙하게 그 길을 가기를 원하셨으므로 환국오법(桓國五法)을 제정하여 환국의 각 부족을 다스리는 여덟형제를 통하여 경계내의 모든 부족들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때에 땅은 넓고 교통은 불편하였으며 곳곳에 흩어진 모든 사람들 을 천제의 령으로 다스리기는 이미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천제께서는 개벽 이후에 청령하고 순수했던 인간의 심성이 점차 사악해지고 그 생활에 악업을 쌓는 것을 한탄하시었지만 어찌하리오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하늘의 정기와 신의 지혜를 받은 존재인 것을.. 스스로 나아 가는 인간들의 그 발길을 누가 막을 수 있었으랴. 고시리 한인께서 환국의 제방(諸邦)에 내리신 환국오법(환국오훈이라고도 한다)은... 믿음을 지극히 여겨 거짓이 없을 것. 성신불위(成信不僞) 부지런함을 받들어 게으러지 않을 것. 경근불태(敬勤不怠) 순함으로 효를 다하여 거역하지 말것. 효순불위(孝純不威) 염치를 알고 의를 행하여 음행을 삼갈 것. 염의불음(廉義不淫) 양보함으로써 화목하여 서로 다투지 말것. 겸화불투(兼和不鬪) 이 다섯가지 계율이었다. 훗날 불가의 팔정도나 유가의 삼강오륜, 화랑의 세속오계 등이 이 오훈의 범주를 넘지 않는 것인데 오히려 후대의 계훈들은 군(君)에 대한 충과 남자 에 대한 여자의 복종이 추가되면서 환국 시대의 저 순후했던 가르침에서 퇴보했을지언정 한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
때에 환국은 서서히 전성기로 접어들어 나라의 넓이가 동서로 2만리요 남북으로 5만리에 달하였고 비리국,양운국,구막한국,독로국 (희랍과의 싸움에 서 트로이를 잃은 후 동쪽으로 옮겨 구다천국이라고 개명함), 일군국,우루국 ,객현한국,구모액국,맥구여국,직구다국,사납아국,수밀이국(슈메르)의 12연 방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시에 세계 각지에는 환인의 덕음(德音)이 닿지 아니하는 수 많은 종족 들이 곳곳에 산포되어 더러는 정착하고 더러는 무리로 떠돌며 후미진 곳의 사람들은 아직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에 환국의 12연방은 점차로 부족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자연히 12연방들 간에도 영토와 산물을 위한 다툼이 생겼고 고시리 환인께서 주우양 환인께 위를 물리실 즈음에 독로국과 직구다국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직구다국이 우세하여 독로국의 토성이 있던 쿤란을 포위 하여 60여일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의 병장기는 돌로 만든 도끼와 창, 몽둥이가 주였는데 독로국 사람들은 돌팔매질이 장기여서 다가 오는 직 구다국 사람들을 돌을 던져 무수히 쓰러 뜨렸고, 직구다국 사람들은 나무를 얽어 방패를 만들어 돌을 막으며 토성을 기어 올라 갔다. 마침내 토성을 빼앗긴 독로국 사람들이 자그만한 언덕으로 도망가 몰렸고 직구다국 사람들이 그 언덕 아래에 몰려와 둘러 싸기에 이르렀다. 산 위에는 부상 당하고 지친 독로국 사람들이 마지막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독로국의 구원군이 직구다국의 뒷쪽에 나타났다. 그들은 통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백해(카스피해)를 건너 쿤란의 뒤에 상륙했고 갑자기 등뒤에서 나타난 독로국의 공격에 직구다국 전사들은 당황하여 달아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크게 지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직구다국의 장정들이 천명이나 죽었고 마침내 직구다국은 금산(지금의 히말라야의 서쪽 네팔 부근)아래로 옮겨 가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이 직구다국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 싸움에서 이긴 독로국은 서남아시아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 후 수밀이 국의 세력에 밀려 점차 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이 독로국과 직구다국의 싸움은 트로이전쟁이 있기 570년 전의 일이었다. 주우양 환인의 대에 와서 수밀이국은 백해 남쪽에 제국을 건설할 만큼 융성해 졌고 파내류산(지금의 파미르고원 : 파의 원산지이다.)에서 가져 온 파를 대량으로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 주우양 환인께서 처음으로 전자를 만들어 제방에 훈령을 보냈는데 전자는 진흙에 써서 그것을 말린 후 보관하였다. 수밀이국은 이 전자를 기초로 독특한 설형문자로 발전시켜 사용했는데 환국의 사람들은 이것을 쓰기가 어려워 오히려 그림으로 문자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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