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개천록 2

2015. 7. 26. 05:41History of Korea

훗날 신지혁덕이 정리해서 한자가 되는 초기의 그림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천계에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놀라 게 된 일이 생겼다. 사람들이 운석이 떨어진 자리에 가 본즉 아직도 대기 와의 마찰과 충격열로 녹아 내리는 누런 돌들이 있었는데 광채가 났다. 토숙이 기다란 작대기로 그것을 뒤척이니 그 끝이 타들어 갔다. 돌창으로 이리 저리 찔러 보니 찌른 대로 모양이 생기는데 곧 굳어 버리는 것이었다. 차가워진 다음에 그 끝을 구부리니 부러졌는데 토숙이 그것을 가져다 가 불속에 넣고 다시 녹여 봤더니 녹이면 다시 물러져 돌로 그것을 치는 대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평평하게 두드려 편 후에 식히니까 돌 보다 반반하고 광택이 나면서 거기에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토숙이 그 것을 환인께 바치니 환인께서 보시고 이것은 무른 돌이라 가히 요긴하게 쓰일 것이니 더 찾아보라 하셨다. 천계 주위에 땅위에 드러난 여러 철광석 을 주어서 불에 집어 넣었는데 당시에 나무가지들을 모아 벽돌을 쌓아 불을 지핀 열로는 철은 녹이지를 못했고 구리만이 열로 녹일 수가 있었다. 이후에 사람들은 구리만 보면 줏어다가 여러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몇 가지 색깔이 다른 돌들을 섞어서 녹이면 굳은 후의 빛깔과 그 단단함이 다 르다는 알게 되면서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 경험이 축적되어 마침내 석제임 시절에는 청동이 만들어지게 되어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보게되었다.
석제임 환인 대에 와서 천계 주위는 점점 더 추어져 가고 여름이 짧은 대 신 겨울이 길어져 갔다. 겨울에는 살을 에는 매서운 북풍이 휘몰아쳤고 천해는 얼어 붙어 버렸다. 무섭게 많은 눈이 내려 겨울 내내 천계는 눈속에 파묻혔고 짐승들은 동면에 들어갔다. 강과 바다가 얼어 붙어 고기를 잡기가 어려웠고 온천지가 눈에 뒤덮인 들판에는 짐승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 사냥도 곤란했으며 더구나 곡식류나 과일과 같은 채식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직 까지 천을 짤줄 몰랐던 환국사람들이 추위로 부터 자신을 감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짐승들의 모피였는데 몸에 두를 만큼 큰 짐승들의 수효가 점점 줄어갔다. 천계의 백성들은 환인님과 이사 이백의 가르침을 쫓아 그러한 자연환경을 극복해가는 지혜를 발달시키면서 점차로 문화라는 것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옥의 형태를 발달시켜 추위가 스며들지 않는 밀폐된 공간으로서의 거주지를 만들고 천해 주위의 청석들을 주워 바닥에 깔고 그 아래에서 불을 때어 돌이 그 열을 오랫동안 유지하므로서 잠자는 동안에도 집안이 따뜻할 수 있게 하는 온돌이라는 것을 만들어 추위를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물론 초기의 온돌은 몇개의 작은 돌 위에 넙쩍한 큰돌을 올려 밑에 땔 감으로 불을 지펴 돌을 데우는 단순한 것이었는데 밤이면 가족들이 이 뜨꺼운 돌 주위에 둘러 앉아 이야기했고 또 그 둘레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긴 겨울은 사람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주어 사냥이나 낚시를 할 수 없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겨울 동안에 토기를 만들었고 돌을 갈아 여러가지 연장을 만들었으며 여름에 있었던 사냥이나 혼인의 일들을 떠올리며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토기를 만들때 그릇의 바깥 쪽에 단순한 무늬를 넣던 것을 점차 어떤 형태를 가진 그림으로 발전시켜 자기가 잡았던 큰 소나 곰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자기 가족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또한 이때에 환국에는 여러가지 원시 문자들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문자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고시리 대에 환인의 공식 문서에 사용되던 전자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날로 복잡해져 가는 인간 사회의 일들을 담기에 부족함이 있고 또 쓰기가 어려운 글자라 사람들은 그림으로 뜻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 마다 그리는 방식이 달랐는데 석제임 대에 와서 는 거의 3백개가 넘는 사물을 지칭하는 그림들이 정해져서 통일된 약속으로 쓰이기에 이르렀다. 악기도 여러가지가 발명되어 속을 파낸 통나무에 가죽 을 입힌 북이 만들어 졌고 (이때의 북은 가죽이 한쪽 면에만 대어진 것이었다)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입으로 부는 피리 비슷한 것들도 만들어 졌다. 그리고 석제임 대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지난 세월 동안 야생동물들이 점차로 가금화 되어 단순한 식용이 아니라 그 노동력을 인간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아직 농경이 발달하지 못해 밭을 간다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소를 농사에 이용하지는 못했지만 무거운 돌이나 나무 또는 사냥한 큰 짐승들을 옮기는데 소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냥 등위에 싣거나 아니면 대나무나 나무 줄기로 얽어 만든 바구니 같은 걸 잡아 매어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방식이었다. 아직도 말은 야생을 길들이지 못해서 부릴 수 없었는데 말을 사람이 타고 다닐수 있게 된 것은 훗날 지위리 환인 대에 가서였다. 역대 환인들은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계셨으나 그 도가 하늘과 닿아 있고 또한 그 수양의 깊이가 범인과 달라 제병이 침범치 못하였고 스스로 우주와 일신의 기를 다스리는 힘이 있어 스스로 돌아가실 때를 정하여 수를 마치므로 가장 오래지상에 계셨던 고시리 환인이 700년을 채우셨으며 나머지 환인 께서도 보통 수백년의 수를 누리셨고 그 외에도 삼신의 법으로 신선의 경지에 다달은 많은 분들이 계셨다. 혁서제 시절에 서방 만리에 환국의 법을 전한 광서제가 있었고, 주우양환인의 대에는 발귀리가 있어 동방 삼역에 삼의법을 전하였고. 후대에는 자허선인,법수선인,자부진인 등 많은 선인들 이 나타나 환인과 천지의 법을 논하기도 하고 삼청궁에서 노닐기도 하였다.
구을리 환인의 대에 천하 환국의 모든 선인들 께서 한자리에 모여 하늘에 제를 올리고 이것을 "소도제천"이라 했는데 천하 지상의 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을 쌓고 축원을 하며 소도의 한가운데에 18층의 나무단을 쌓고 불 을 붙여 그 기운으로 하늘과 땅을 이었다. 그리고 문자가 발달하여 옛 환인의 가르침과 삼신의 교를 가르치고 배우 며 이를 남겨줄 수 있게 되었을 때 삼묘산 아래에 "서자부(庶子部)"를 세웠 다. 삼신의 교를 가르치는 세계 최초의 종단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인도에 가람이 서기 2천년 전의 일이었다. 환인과 삼신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을 서자(庶子)라 했는데 지위리 환인대 에는 이 서자의 수가 삼백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훗날 불교에서 말하는 "출 가자(出家者)"의 뜻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이 서자였다. ♣ 지금은 이 서자란 단어를 정실부인이 아닌 측실에게서 얻은 아들의 뜻으로 변해져 쓰이지만 당시의 서자는 우두머리가 될 삼의 뜻이었고 "서"는 머리를 의미하는 "수"의 발음이었다.(수머리-->우두머리) 한자 "서"의 뜻은 빛과 같은 의미도 있었다. 훗날 이 "서"자의 풀이가 변해 버리면서 서자의 뜻도 다른 것이 되었다.♣ 구을리 환인 때에 사람은 더욱 많아지고 천계 주위의 환경도 갈수록 한냉 한 것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자 마침내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백호가 해 돋는 곳으로 가 준비해 둔 그 땅에 대한 전설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떠나기도 했다. 정든 땅 천계를 떠나면서 사람들은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남아 있는 사람 들에게 손을 흔들며 "아루라 아루라(기억해 줘 생각할거야)" 소리치며 고개 를 넘어 갔다. 당시에 "안다"는 말은 "기억한다"는 말과 "생각한다는" 말 과 분리되어 쓰이지를 않았다. 즉 안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은 그 뜻이 혼재되어 쓰였던 것이다. 천계에서 천해의 남쪽을 돌아 동방으로 가는 길목에는 까마득히 삼청궁이 보이는 고개 마루가 있었고, 그 고개를 넘으면 환인 계신 삼청궁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넘어가면서 마지막 돌아 보며 "아루라!"하고 외치던 그 고 개를 사람들은 "아루리(기억하리)고개" 또는 "아르이고개, 아랑고개"로 불 렀다고 한다. "아랑 아랑 아르리 아르이고" 마침내 안파견께서 천계에 처음으로 하늘 백성의 나라를 여신 후 하늘의 일주기인 3000년이 차매 천계의 지덕이 쇠하고 천하의 기운이 동쪽으로 옮 겨가므로 드디어 천신역사의 마무리를 할 때가 오게 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번성하고 생육하여 지상의 주인으로서 부동의 위 치를 가지게 되고 인류에 더 이상 위협이 될만한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한 천제께서는 하늘이 인신을 빌어 인간을 교화하고 보호해 줄 시기가 지났음 을 아시고 이제 인간이 스스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천계를 봉할 것을 명 했다. 마지막 환인이 되시는 지위리께서 그 대업을 위하여 천계로 가시게 되었 다. 때에, 천계의 주위에는 사방 이백리에 마을들이 있었고 큰 부락에는 삼백호가 넘는 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어느덧 혈거생활의 티를 벗고 비록 흙 벽돌을 쌓고 짚으로 이은 지붕이라 해도 정지와 방들이 나누어진 가옥들을 짓고 살 무렵이었다. 집집 마다 아녀자들이 말린 삼줄기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베를 엮었으며 부족장이나 그 가족들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 발이었고 신을 신는다는 것을 생각도 못해보고 있었다) 대대로 토숙의 후손들이 쇠를 다루는 비법을 전수 받아 구리나 청동으로 갖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그 공방은 비밀로 되어 있어 보통 사람들이 그 안을 볼수가 없었다. 거울과 칼, 각종 장신구나 장식물들을 금,은,청동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이러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은 신분을 나타내는 귀중한 신표로 쓰였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길들여진 말을 가지고 있어 타고 다녔는데 안장이나 마구 같은 것이 없이 말의 맨등에 그냥 타고 다녔으며 삼사와 오가를 비롯한 지배계층의 사람들이라야 호피나 녹피를 말등에 얹고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수레는 선대 때 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바퀴와 축의 제작은 당시 의 기술로서는 지난한 것이어서 극히 만들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것과 당시의 사람들이 바퀴를 만들고 그것이 잘 구를수 있도록 축을 만들어 끼우는 작업은 그 기술적 난이도에서 비슷한 것이었다. 커다란 돌을 돌로 때려 둥근 바퀴로 만드는데 일년이 넘는 시간과 작업이 소요됐고 바퀴 한가운데를 둥글게 뚫어 꼭 맞는 나무를 끼워 축을 만드는 것은 대부분의 연장이 돌이었던 당시에는 엄청난 숙련을 요하는 첨단기술이 었다.
초기에 천계의 환인과 각 연방의 단군들이 모두 선인들이어서 서로 신법( 神法)으로 교통(交通)하고 서로 뜻을 전하여 수만리를 격하고도 서로의 존 재를 알고 환인의 령(令)과 훈(訓)이 전하여져 왔지만 이제 사람들이 육식으로 다른 생명의 피와 살을 먹으므로써 그 피가 탁해지고 살생의 업이 쌓여 그 영력(靈力)이 쇠미해 지므로 천부경이 말하는 바의 하늘의 기가 그대로 화하여 된 개벽 이후 첫 인간들의 신성과 청정한 심력이 퇴화되어 몇리 만 떨어져도 의사를 전하지 못하고 일년을 걸어도 국(國)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더구나 하늘과 사람 사이의 교감(交感)은 막히어 환국 말기에는 오히려 지평선 저 너머에 다른 연방들이 있음 조차 잊혀지더니 지위리 환인 대에는 12연방이며 옛 선인들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전설 처럼 변해 버렸다. 그리하여 서로 만리를 격해 있는 연방들은 서로를 잊고 희미한 옛기억을 신화로 간직한 채 서로 독자적으로 문명의 여명을 열어가게 되었다. 지위리께서 천계를 봉하실 무렵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밀이국은 그 전성기 를 열고 있었고 이집트에는 나일강 유역에 훗날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태양신의 아들들이 서쪽으로 부터 이동해 오고 있었어요. 독로국에 패하여 금산의 아래로 이동해 온 직구다국은 히말라야와 티벳고원의 사이에서 수많은 소왕국으로 분열되었는 데 환국의 신교(삼신교)를 계승하여 많은 선인들이 도를 닦고 덕을 쌓으니 여러 연방 중에서 가장 환국의 신교를 굳건히 유지하여 훗날 치우천황 대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로 불리는 묘선공주 자매가 태어났으며 그 천년이후에는 인류사상 가장 큰 정각을 이룬 석가모니불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양자강 이남은 그 때까지도 유인원의 세계였으며 황하유역은 천계에서 흥안령 산맥을 넘어온 소수의 사람들이 황토 속에서 미개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세계각지의 사람들 간에 교통은 끊어지고 소식은 두절되어 서로 간에 그 존재 조차를 모르게 되어 버렸다. 삼청궁은 동으로 천해에 닿아 있어 취선루에 올라서면 푸르고 맑은 천해가 한눈에 보였는데 아침에 해가 뜰 때는 수면 가득한 안개 위로 햇살이 퍼지면서 오색 영롱한 서기가 삼청궁을 감싸듯 피어올랐다. 서쪽으로는 자정전을 지나 자하루로 이어졌고 북쪽으로는 소선정이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삼청궁의 정문인 태정문이 있었고 그 안과 밖은 커다란 뜨락이었는데 바닥에는 모두 청석이 깔려 있어 비오는 날에도 흙을 묻히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 태정문을 마주 보면서 나트막한 언덕 위에 소도가 서 있었고 그 주위 십리에 걸쳐 천호에 달하는 인가들이 있었다. 흙으로 벽을 바른 나트막한 집들과 나무 기둥을 세우고 짐승의 가 죽으로 둘러친 움막과 같은 집들 있었고 천계를 조금 벗어난 지역에는 동굴을 이용해 거주로 삼은 마을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천계 주위의 넓은 들판에는 양과 소가 무리지어 다녔고 사슴들이 뛰어 다녔으며 가끔씩 수만마리가 넘는 소떼들이 지나 가고는 했다. 한번씩 천계의 장정들이 이런 소떼나 양떼를 몰러 나갈 때는 온 천계가 떠들썩할 정도였다. 운사와 우사가 사냥에 앞서 환인께 고하고 소도에 올라 엄숙하고 경건하게 하늘에 제를 올렸다. 그들은 여름 사냥을 나가면 달이 한번 차고 기우는 시간이 지나야 돌아 오기도 했는데 소나 양떼를 쫓아 수백리 밖 까지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수백마리가 넘는 소나 양을 몰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면 여자들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하였다. 평화스러운 천계였지만 늘 그렇게 안온하지만은 않아서 때때로 사나운 부족들과 싸우는 때도 있었다. 일정한 정착생활을 배우지 못한 종족들이 사냥감을 찾아 광활한 대륙을 옮겨 다녔는데 그들이 천계 주위에 나타나면 불 상사가 생기기도 했던 것이다. 사냥을 나갔던 천계사람이 그들에게 죽거나 부상당해 돌아 오기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이 끌려가기도 했다. 천계에는 이미 남자들이 그러한 외부종족을 쫓아낼 힘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남자들은 언제나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천계의 직할지 내에서만 삼백명이 넘는 장정들이 한시각내에 모일 수 있었고 간혹 큰무리의 종족이 천계의 접경을 침범해 올때는 천계 주위 오백리에 산재한 부락마다 환인의 파발이 달려 각 부락에서 수천명의 전사들이 모였다. 천계를 침범한 자들은 천계의 전사들을 보면 기겁을 하고 도주했던 것이다. 이미 천계의 장정들은 끝에 청동으로 만든 촉을 단 창을 쓰고 있었고 전사들의 우두머리들은 청동검을 휘둘렀다. 돌도끼나 돌창, 또는 돌칼을 들고 덤빈 원시 종족들은 천계의 전사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싸움에 져서 달아나거나 아니면 무리 져서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씩 수백명이 넘는 유랑족들이 잡혀서 천계로 끌려오기도 했는데 환인께서 이들을 타일러 천계내에 살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지위리 환인대에 가장 커다란 세력으로 천계를 침범해 왓던 무리가 바로 반고가한의 종족이었는데 이들은 천해의 남쪽에서 짐승의 떼를 쫓아 북으로 올라 왔던 시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종족의 우두머리인 반고란 자는 머리가 영리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또한 어디서 배웠는지 신선의 술을 익혀 여러가지 호풍환우하는 재주를 부렸다. 맨 처음 천삼백리 남쪽에 있던 선비 부락에서 연락이 왔을 때 환인께서는 의례히 있어 왔던 조그만 사건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다급한 사자 들이 남쪽의 각 부락에서 달려 왔으며 여러번의 싸움에서 천계의 장정들이 다치고 죽었으며 수 많은 가축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해서, 환인의 명을 받고 운사가 천계의 전사들을 인솔하고 남쪽으로 내려 가게 되었다. 운사의 큰 아들인 혁덕도 이때에 처음으로 아비를 따라 싸움터로 떠났다. (구름 주 : 이 혁덕이 전생에 내가 운사와의 사이에 낳은 첫 아들임, 믿거나 말거나) 그때 혁덕의 나이가 열 여섯이었고 그 아래로 다섯의 아우가 있었는데 제일 늦게 태어난 애만이 딸이었다. 반고와의 싸움 이 있던 해 애만은 다섯 살이었다.
운사가 지휘하는 천계의 전사들과 남방의 반고족과의 싸움은 여러달을 끌었다. 반고는 기술을 부려 돌멩이를 날리고 구름과 안개를 불러 싸움터를 가리기도 했으며 때때로 숲에 불을 일으켜 천계의 전사들을 크게 괴롭혔다. 게다가 짐승들을 다스리는 재주가 있어 수백마리의 호랑이와 곰을 앞세워 쳐들어 오기도 하고 소떼들을 우리 전사들을 향해 몰아대기도 하여 크게 고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운사가 주문을 외어 바람과 비를 잠재우고 성난 맹수들도 운사의 발앞에 얌전히 엎드리며 공중을 나르던 돌들도 먼지로 변해 힘을 못쓰게 만드는 것을 보자 흉폭한 반고의 무리들도 더 이상 저항치 못하고 항복하게 되었다. 남쪽으로 떠난 뒤 여러달이 지난 후 운사는 항복한 반고의 무리들을 데리고 천계로 개선했다. 환인께서 마당에 꿇어 엎드린 반고를 보시고 그 재주가 범상치 않음을 아깝게 여기셔서 살려 주시고 천계에 따로 구역을 주어 자기 종족들을 데리고 살게 하셨다. 반고는 그 후에 환인께 여러가지 선법과 비결을 배웠는데 원래의 바탕이 비뚤어진 자라 자꾸 사술과 기행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러 잡신과 통교하고 난학(亂學)에 몰두하여 나름대로 사파(邪派)로 일가를 이루게 되는데 원래 천계의 백성들 중에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러 생겼다. 환인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 아주 못 마땅히 여기셨다. 하지만 재주가 있으니 잘 가르치면 언젠가 큰 인물이 되리라 여기시고 크게 나무라시지 않았다. 지위리께서 천계를 다스리신지 150년이 되던 해 환인께서는 이사 이백과 여러 부족의 삼사와 오가를 삼청 궁으로 부르시고 천지의 기운이 한번 순환하여 이제 그 끝에 왔으므로 지금 부터 옛 안파견으로 부터 삼천년 동안 계속되어 온 천지공사를 마무리하리라 하시고 십년간 자정전에 드시어 하늘의 뜻을 헤아려 결정하겠노라 하셨다. 그 십년간 누구도 자정전에 출입치 말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환인께 고하지 말라 하시고 자정전에 들어 가시니 10년간 아무도 환인을 뵐수가 없었어요. 이 환인묵거 십년 간에 천계에는 많은 이변이 있었다. 태양이 사라져 사람들이 심히 놀랐으며(일식현상이었을 것이다), 사흘 밤 낮 동안 해를 볼수 없었으며 (대규모의 황사바람이 북국을 휘몰아 덮어 왔음 ), 일주야 동안 하늘이 붉은 빛이었고 (천계의 서북쪽에 엄청난 산불이 났는 데 그 불빛이 일주일 동안 하늘을 붉게 만들었다), 갑자기 짐승들의 떼가 땅에서 사라졌으며, 천해의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지진과 홍수가 잇달아 일어났다. 지위리께서 묵거에 들어 가신지 8년째 되는 해 여름, 천해가 바닥을 드러 낼 만큼 극심한 가뭄이 있어 물을 찾으러 사람들이 말라 버린 들판을 헤매 고 다녔다. 겨울에 소나기가 내렸으며 여름에 우박이 떨어져 사람들을 심히 놀라게 만들었다. 9년째 되는 봄에는 지진이 있어 을루족 마을이 땅속 에 함몰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이 피난처를 구해 천계로 몰려 왔다. 드디어 환인께서 말씀하신 10년 묵거의 마지막해에 천해에서 거북이 한마리가 뭍으로 올라 왔는데, 그 크기가 어른 키의 두배만 하고 입가에 기다란 흰 수염이 나 길때 땅바닥에 길게 끌릴 정도였다고 한다. 천해에서 뭍으 로 올라 온 거북은 엉금엉금 기어 삼청궁을 향해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놀라고 두려워 아무도 거북을 막지 못했어요. 마침내 삼청궁에 다달은 거북은 자정전 앞마당에 와 기진했는지 땅바닥에 엎디어 꼼짝을 안 했다. 환인께서 자정전의 문을 열고 십년만에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그때였다. 우리들은 깜짝 놀라 땅에 엎드려 배례하고 그 모습을 우르렀더니. 환인 께서 입으신 옷은 앉은 채로 낡아 다 떨어 졌고 하얀 수염이 성성하게 가슴 아래 까지 휘늘어졌는데 두눈에 광채가 빛나 감히 쳐다 보지를 못하였다. "네 오기를 여태 기다렸도다." 하고 환인께서 거북에게 말씀하셨는데 이 미 거북은 엎드린 채 숨을 거둔 후였다. 환인께서는 소도에 온 천계의 백성들을 다 모이게 하시고 커다란 단을 쌓고 나무를 모아 올린후 신귀(神龜) 의 등껍질을 불에 굽기 시작했다. 북두칠성이 도는 것을 따라 하늘이 도 는 대로 거북의 등껍질이 절로 돌더니 새벽 여명에 잔월이 빛을 잃을 무렵 이 되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거북의 등껍질이 부풀어 쪼개졌다. 육각형의 무늬 마다 가늘게 금이 가 오묘한 형상들을 나타내었는데 환인께서 단 앞에 등껍질을 올리고 칠주야의 제를 올리셨다. 환인께서 그 거북의 등껍질 과 선천시대 부터 전하여 오던 용경을 서자부에 보내어 거북의 등껍질에 나타난 무늬의 뜻과 용경의 뒷면에 새겨진 옛글의 뜻을 아는 자를 데려 오라 하셨다. 서자부의 수백명 도인들이 다 그 뜻을 풀지 못하더니 한 사람이 있어 한손에 용경을 높이 들고 귀갑을 밟고 서서 일곱번을 돌며 춤추면서 계송을 하니 옛 환인께서 가르치신 바라 백교의 으뜸이요 천학의 수자리요, 만법의 중앙이니 바로 밝닥족의 신교의 가르침이라 천부경의 양광정명을 외 치는 소리였다. 또한 하늘이 거북을 보내어 하늘의 뜻을 전한 것이니 선천 시절 하늘의 약속을 이룰 때가 왔음을 널리 알리는 소리였다. 이가 바로 서자부의 제일선인(弟一仙人) 환웅이었다.  

출처 : spell-bound
글쓴이 : 쿨옴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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