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7. 01:30ㆍ세계고대문명/수메르·이집트,인도,시베리아,북미
새무얼 크레이머 교수
[스압]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 http://www.dogdrip.net/22910463 )
새뮤얼 크레이머는 20 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메르 학자로 평가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권위 있는 역사서 “수메르인들”에서 성서에 나오는 족장들과 수메르인들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오랫동안 논란을 자아내고 있는 이 골치 아픈 문제가 그의 궁극적인 관심사다. 그는 먼저 수메르 문명과 성서에 나오는 히브리 인의 전통문화를 비교하고 있다. 종교 교육 및 문학 분야에서 수메르인들이 이룩한 업적은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 살았던 이웃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곁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이긴 하지만 고대 히브리 인과 성서에 미친 영향을 통해 현대인의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수메르 문학작품이 차츰 발굴되 고 번역된 결과 히브리인이 수메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는 날이 갈수록 분명해 지고 있다. 이제 수메르 문학작품이 성서와 공통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수메르인과 히브리인 사이에는 분명 문화적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이어서 크레이머는 이 문화적 관계를 자세히 부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그는 매우 중대한 의 문에 이르게 된다. 수메르인이 고대 중동에서 문학적 문화적으로 그렇게 중요성을 가진 민족이 수메르 문명 6 었고, 그래서 히브리 저술가들의 문학작품에까지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면, 성서에 그들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성서를 읽는 사람들이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다.
“구약성서”에는 고대 중동의 주요 문명이 대부분 언급되어 있다. 이집트인, 가나안인, 아모리인, 바벨론인 이들은 모두 성경에 등장한다. 그런데 왜 수메르인은 없는가? 예컨대 창세기 10 장과 11 장에는 수많은 인물과 땅과 도시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학자들이 대게 수메르와 동일시하는 ‘쉬나르’라는 불분명한 낱말을 빼고는…성경 어디에도 수메르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런 사실은 그들이 탁월하고 큰 영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평판과 모순된다.
크레이머는 그의 지도 교수인 아노 포이벨(이분도 훌륭한 수메르 학자다.)이 1941 년에 처음 발표한 견해를 되살리려고 애쓴다.
흥미롭게도 이 당혹스러운 수수께끼의 해답은 4 반세기 전에 이미 아노 포이밸 교수가 [아메이칸 저널 오브 세미틱 랭귀지(셈어)] (제 58 권 <1941 년>.P20~26)에 발표한 논문에서 짤막한 논평 형태로 제시되었다.
포이밸 교수의 제안은 오리엔트 학자들 사이에서 어떤 반향도 얻지 못했고, 그들은 이제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시간의 시련을 견뎌내고 조만간 히브리와 수메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중요한 업적으로 인정 받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수메르 학자나 성서 학자들은 왜 이 발상을 받아들이지도, 진지하게 반박하지도 않았 을까?
어쩌면 그것이 기존 학설에 너무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머리를 그 쪽으로 돌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포이밸의 발상은 성서 연구와 관련된 의미 심장한 암시를 무한히 내포하고 있다. 정통파 학자들이 혁명적인 발상을 어떻게 다루는가?
그들의 닫힌 마음속에는 의혹이 생겨났지만, 수메르학의 대가를 감히 비판하기가 두려운 나머지 모두 입을 다물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작전이 자주 채택된다.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발상이 제시 되었을 때 그것을 죽여 없에는 효과적인 방법은 ‘세간의 관심이라는 산소를 차단해서 아에 질식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하면 지적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도 없고 전선에 나가서 상대의 반격에 쩔쩔맬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수메르 문명
7 크레이머는 이제 수메르인이 성서에 등장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법상의 특징을 도입한다. 다음 장에서 홍수 이전의 족장들을 찿으러 갈 때 크래이머가 소개한 이 문법의 특징의 도움을 받게된다.
수메르인은 학자들이 ‘탈락자음’ 이라고 부르는 것 (어말에서는 생략되거나 발음되지 않는 자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신을 뜻하는’딩기르(dingir)’는 ‘딩기(dingi)’로 발음 되었다. ‘r’자음은 설형문자로 기록되긴 했지만 발음은 되지 않았다.
크레이머는 두어 가지 예를 든다음, 마침내 언어적이고 지적인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이제 ‘수메르(Sumer)’라는 말을 검토해보자, 이 단어는 설형문자 문헌에서는’슈메르 (Shumer)’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크레이머의 스승 포이벨은 이 낱말이 ‘솀’(Shem,한글역 성서의 셈)이라는 이름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아의 아들인 셈은 앗수루(아시리 아), 엘람, 아람, 에베르(에벨)의 직계 조상이다.
이들은 모두 나라와 민족 이름의 기원이 된 인물들이고 특히 에베르는 히브리의 호칭적 기원이다. 성서에 나오는 셈이라는 인명이 수메르라는 지명의 기원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놀라운 일로 여길지 모르나, 뛰어난 수메르 학자 크레이머가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어서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설명하고 있다.
1. 히브리어 모음 ‘e’는 설형문자의 모음 ‘u’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낱말 ‘Shem’도 그런 경우다. 이것은 아카드어의 ‘Shum’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메르어의 ‘슈메르 (Shumer)’는히브리어에서 ‘셰메르(Shemer)’가 된다.
2. 슈메르의 끝자음 ‘r’은 생략할 수 있는 자음으로서 발음되지 않는다. 따라서 ‘Shumer’(슈메르)가 히브리어에서는 ‘Shem’(셈)으로 발음될 것이다. 이 결론은 피할 수 없는 동시에 계시적이다. 포이벨의 가설이 옳고, 셈이 슈메르/수메르와 같다면, 성서를 서술한 히브리인 저자들 (적어도 그들의 일부)은 수메르인을 히브리 민족의 선조로 여겼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노아의 홍수로 그 이전에 있었던 도시들이 파괴된 뒤, 성서에 나오는 쉬나르(고대 수메르) 땅을 다시 차지한 사람들은 그들의 선조가 기억하고 있는 노아의 아들 셈의 이름을 따서 슈메르(수메르)인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슈메르는 인명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수메르 문명
8 수메르인의 본 고향이 자그로스 산맥으로 결정되면 수메르인과 히브리인의 기원과 고고학적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서사적 여행이 그 장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고고학적 기록을 통해 그 여행을 추적해 보자. 수메르인이 메소포다미아 평야로 이주한 시기가 일단 확정되면 그 여행은 성서의 그림과 놀랄 정도로 들어맞는다
http://www.voamonline.com/Bible_civil/bc-04.pdf
'세계고대문명 > 수메르·이집트,인도,시베리아,북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고아의 동방의 등불 (0) | 2015.12.14 |
---|---|
네번째왕 동방박사 ㅡ타오르 (0) | 2015.12.14 |
이집트 여왕 파라오 "하트셉수트" (0) | 2015.09.01 |
[스크랩] 거인들의 흔적 (0) | 2014.08.24 |
마르둑 그는 누구인가? (0) | 2013.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