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지족(9)
-
돈황은 천산 주변이고, 월지족이 거주하던 곳이다. (돈황 - 영문위키번역)
돈황은 천산 주변이고, 월지족이 거주하던 곳이다. The Dunhong (Chinese: 敦薨; pinyin: Dūnhōng) mountain according to the Shanhaijing is a mountain of the Tian Shan range. Lin Meicun identifies it with the Dunhuang (Chinese: 燉煌; pinyin: Dùnhuán) of the Shiji by Sima Qian which states that: "The Yuezhi originally lived in the area between the Qilian Shan or Tian Shan and Dunhuang, but after they were defeated by the ..
2023.06.08 -
東으로 온 월지족
월지(6) 東으로 온 월지족 그렇다면 감숙성 알타이산이 근거지인 월지족이 왜 중국의 북동쪽 河北지역에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고대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부른 이민족에 대하여 알아 보아야 한다. 중국인들은 중국땅으로 부터 사방에 있는 오랑캐를 東夷, 西戎, 南蠻, 北狄이라 불렀는데 서쪽 오랑캐인 서융과 북적을 합쳐 융적이라고도 하였다. 지금의 중국의 북서부 간쑤. 산시성 일대에는 예로부터 융적이라 불리는 유목민족이 살았다. 주나라시기 이후로 산서성과 하북성을 남북으로 하고 서쪽의 고원지대와 동쪽의 태행산맥 서북쪽에는 이들 융적의 활동이 강성하였다. 서쪽에서 온 유목민인 서융이 중국 하북지역으로 이동하여 활동하자 이를 융적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서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보면 “서융의 성질은 용감..
2023.03.20 -
마지막 빙하기 기원전 11050년전 인류의 유일 후손ㅣ토가라인의 기원
토하라인의 기원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유럽어족 계열 민족들 중에서는 원시 인도유럽어를 쓰던 공통 조상에서 직접 갈라져 나온 부류로 추정되며, 이탈로켈트(Itali-Celtic)와 가깝다고 추측되고 있었다. 이런 추측은 인도유럽어족이 아르메니아에서 기원했다는 아르메니아 가설 및 러시아의 쿠르간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쿠르간 가설과도 연결되어 현재 주류 학계의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2021년 네이처의 발표에 의하면 토하라인과 관련이 있어보였던 타림 분지 미라들은 유전자 검사로 마지막 빙하기 말엽 널리 퍼졌던 *플라이스토세 인구[2][3]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이 확인됐으며, 다른 지역 주민들과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한다. 즉, 유전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토착민이라는 것이다. 고대 ..
2023.03.09 -
토하라인ㅣ토카로이 ㅣ 월지족ㅣ 위그르인ㅣ스키타이ㅣ마지막 빙하기 인류의 직계후손
https://youtu.be/OB8eeVd7R_M 중앙아시아사 인도유럽어족 중앙아시아의 민족 인도유럽계 민족 인도유럽계 민족 [ 펼치기 · 접기 ] 언어별 명칭 영어 Tocharians 그리스어 Τόχαροι 라틴어 Tocari 1. 개요2. 역사 2.1. 기원2.2. 초기 역사2.3. 박트리아 이주2.4. 불교 전래 이후2.5. 마니교의 전파와 멸망 3. 언어4. 문화5. 같이보기 1. 개요[편집] https://youtu.be/OB8eeVd7R_M 기원전 2000년경부터 9세기경까지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일대에 거주한 코카소이드계 민족으로, 인도유럽어족 계열 언어를 쓰는 민족들 중에서는 가장 동쪽에 거주한 민족이다.[1] 신장 지역의 타림 분지 일대의 옛 주민이자 현 위구르인의 조상중 하나로..
2023.03.09 -
영국인? 아닙니다! 중국인 입니다.
[다큐]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중국인의 정체는? Xitoyning yagona oq odamlari "pomiri" haqida - YouTube
2023.02.06 -
월지 토벌과 사망ㅣ월지왕의 해골은 흉노의 술잔이 되다ㅣ월지와 신라는 모계혈통으로 왕이 되다.
월지 토벌과 사망 묵돌 시절 월지는 흉노의 서방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당시 서역 나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우현왕이 한나라와 소규모 전쟁을 벌인 이듬해인 기원전 176년(한나라의 효문제 시대), 묵돌과 효문제가 편지를 교환하였다. 묵돌이 보낸 다음의 편지에는 월지 토벌의 내용이 나타난다. “ 지금 작은 관리들이 약속을 깨트렸기 때문에[4] 그 죄를 물어 이번에 우현왕에게 그 벌로써 서쪽으로 월지를 토벌하게 하였소. 다행히 하늘의 가호로 단련된 정예 병사와 강건한 말로써 월지를 쳐부수어 이를 모조리 죽이거나 항복시키고 누란, 오손, 호게 및 그 인접 26개 국을 평정하여 이들을 모두 흉노에 병합하였소. 이리하여 각 유목민족은 합하여 한 집안이 되었고, 북쪽 지방은 이미 안정을 찾았소. ” —..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