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족 신화

2022. 11. 4. 04:34신화/북유럽신화






켈트인(Celt, Celtae, Gallia)

켈트인은 BC 2000년 경부터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 널리 퍼져 살던 고도의 철기문화를 소유한 민족이었다. 이들은 잘 알려진 영국과 프랑스지방은 물론 스페인 북부와 할슈타트 같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다뉴브 강 유역, 그리고 더 나아가 흑해연안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에 걸쳐 광범위한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켈트인은 매우 발달된 철기문화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농경과 무역에 종사하며 그리스, 에트루리아와의 잘 발달된 교역수단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의 지도자들은 왕과 같은 존재가 아닌 매우 부유한 상인 전사들로 대부분이 요새화 된 부락을 건설해 살았으며, 매우 정복욕이 강한 민족이었다. 이들은 BC 390년 경 로마와 그리스의 델포이를 정벌했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이들은 하얀 피부에 금발, 푸른 눈의 종족으로 묘사되어지는데 그 중에는 붉거나 갈색 빛의 머리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머리를 탈색하기도 하고 얼굴이나 몸에 색을 칠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 가부장적인 제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의 차별이 없었으며, 여자가 전사가 되고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화려한 시절은 로마와 게르만 족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로마와 게르만 족 연합군은 켈트인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을 펼쳤고, 오랫동안 평화를 누리던 켈트인은 그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유럽 본토의 켈트인은 게르만과 로마인들의 수중에 떨어져 그들과 동화되었고, 그 이외의 켈트인들은 영국과 아일랜드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터전을 잡았다. 이런 이유에서 인지 현재 켈트인의 문화나 종교에 대한 것들은 유럽 본토에서 보다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그 자취를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 드루이드(druid)

드루이드는 켈트인의 사제를 지칭하는 말로 이들은 사제뿐 만이 아니라 행정관이자 학자이며, 동시에 의사이기도 했다. 이들의 주임무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왕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었다. 드루이드는 켈트의 특권층으로 지적 지배 계층이었다. 이들은 전투에 참가하지도 않았고 세금을 내지도 않았다. 드루이드는 세습되지 않았고, 가장 유능한 사람 중에서 선발되었다. 이들은 마법에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마술은 자연 그 자체의 힘을 빌어 그 가호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종교상의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신전을 세우는 대신 커다란 돌을 세우고 제단을 만들었는데 영국 솔즈베리에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는 이런 드루이드들의 흔적이라고 전해진다.

이들은 영혼이 순환한다고 믿었는데 종종 겨우살이를 추수하는 것으로 이를 표현하곤 했다. 이는 단순한 주술적인 의식을 넘어 깊은 믿음과 계절의 자연순환에 관계된 위대한 켈트의 신들을 찬양하는 것으로 켈트인들의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현실세계를 지배했다.

드루이드들은 켈트인의 커다란 제전을 준비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는데 이는 이 축제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한 예로 벨다인의 축제와 샴헤인의 축제를 들 수 있다. 벨다인은 태양의 영예를 위해 산 위에 커다란 불을 점화 시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겨울의 은둔과 차가운 시간을 지나 태양의 혜택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알리는 축제였다. 샴헤인은 ‘평화의 불’이라 불렸는데 이때가 켈트인에게는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였다. 새해 전날밤(10월 31일)에 시작해 새해(11월 1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축제는 이후에 ‘할로윈(Halloween) 데이’의 유래가 되었다.

 켈트신화

켈트인의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물론 북구신화보다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 켈트인이 우수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전 유럽을 호령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로마와 게르만 족에게 밀려 유럽 본토에서 그 자취를 감춰버린 이후, 이들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 존재자체가 아주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마와 게르만 족에게 밀려난 켈트인은 현재의 영국과 아일랜드지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터를 잡게 되었고 이들의 신화도 이 지역에서 본격적인 부활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유럽 본토에 거주했을 당시의 켈트인의 본래의 신화라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으나 유럽 본토의 켈트인의 흔적은 거의 철기시대의 유물로만 남아 있는 현실이라 현재 켈트신화는 아일랜드의 켈트신화를 그 모토로 하고 있다.

켈트신화는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구전되었는데 주로 '바드(Bard)'라 불린 음유 시인들과 드루이드 사제들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구전되던 켈트인의 신화는 서기 5∼7세기에 이르러 아일랜드의 기독교 수도사들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구전을 통해서 전해지다 보니 전설이나 역사적인 기록들이 추가되거나 때로는 잊혀지기도 했지만 수도사들에 의해 기록되어지면서 이교도적인 요소들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켈트신화는 12∼14세기 기독교 수도사들에 의해 많이 흩어져 있던 고대 아일랜드 적인 요소들이 모아지게 되었는데 어떤 기록들은 18세기까지 걸려서 기록되기도 했다.

켈트신화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이를 ‘거대한 네 흐름’이라 부른다.

첫 번째는 신화의 시대로 이른바 ‘침략의 시기’, ‘침략의 서’라고 불린다. 이 시기는 서로 다른 여섯 부족들이 에린에 어떻게 들어와 정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착하는 과정에서 부족들 사이의 전투와 다난(신) 족에 의해 에린이 평화를 되찾는 시기. 그리고 밀레 족의 침략으로 신족이 ‘티르 나 노이, 젊은 신들의 나라’를 맞이할 때 까지를 말한다. 신들의 아버지 ‘다그자’, 신들의 왕 ‘누아자’, 빛의 신 ‘루’ 등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며 이들 사이의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이다. 또한 이 부분이 켈트의 신화 부분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얼스터(Ulster)의 시대로 울르 인과 코너리아 인의 시대라고도 한다. '얼스터의 저주'로 알려져 있는데 코나흐타, 라인스터, 먼스터 간의 전투를 그리고 있으며, 위대한 전사 쿠헐린과 그를 따르는 붉은 지팡이 기사단, 쿨리의 소 사냥에 관한 이야기다. 신들의 시대에서 영웅의 시대로 전환되어가는 시기였다.




세 번째는 피니안의 시대 혹은 오시안의 시대라고도 한다.
라인스터 지방의 피아나 기사단의 수장인 핀 마쿨과 그의 아들 오신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다. '제임스 맥퍼슨(1736∼1796)'에 의해 '오시안의 전설'을 발굴되며 전 유럽에 켈트인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끌게 했다. 서서히 기독교적 요소들이 등장하게 되는 시기였다.

네 번째는 역사의 시대, 또는 왕들의 시대로 불리며 기존 켈트의 신화보다는 기독교적 시대이다. 약 1000년 경에 위대한 왕인 브라이언 보르의 등장과 클론타프에서 더블린의 데인 족을 무찌른 이야기와 이후 왕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기로 신화의 시대에서 거의 독립된 시기였다.

켈트신화는 아일랜드(Ireland)의 신화와 웨일즈(Wales)의 신화를 합친 것을 말하기도 하는데 웨일즈의 신화는 샬로트 부인의 ‘마비노기온(Mabinogion)’ 과 같이 과거 음유 시인들에 의해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아더왕의 이야기(Arthurian Legend)’ 등 기사도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켈트신화의 세계

켈트인의 신화 속 세계는 다른 유럽의 신화들과는 사뭇 그 형태가 다르다. 다른 신화들처럼 신들에 의해 세상이 창조된 식의 창세 신화 대신에 이들은 이미 존재한 지역에 신들이 이주해 왔다는 독특한 ‘침략신화’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들은 내세사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곳은 현실과는 아주 다른 장소였다. 켈트인은 그 곳을 안개의 저편에 있는 곳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그곳으로 부터 영혼이 오고 간다고 여겼다. 즉, 그곳으로 부터 새로 태어나는 자의 영혼이 현실로 오게 되고 죽은 자의 영혼은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믿어졌다. 그곳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승이나 지옥의 이미지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곳은 신과 요정들이 사는 세상으로 젊음과 생명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바다 저 멀리, 혹은 호수나 땅 속, 숲속이나 나무의 등걸 등 이곳과 현실의 세계는 연결되어 있으며, 그곳은 요정이 얼굴을 내밀 곤 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현실세계는 ‘에린(Erin)’으로 불리는 섬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현재의 아일랜드(Ireland)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랜 옛날 이곳 에린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불모의 대지였다. 시간의 흐름은 이런 에린을 녹색의 대지로 만들었고, 신들을 비롯한 여섯 종족이 이 에린으로 이주해오면서 대지는 넓어지고 호수는 늘어났으며, 이윽고 에린은 다섯 개의 커다란 지역을 지닌 거대한 대지로 변해간다. 이 다섯 지역은 각각 '울라(Ulaid, 얼스터)', '코나흐타(Connachta, 코노트)', '라인(Rhine, 라인스터)', '무안(Mumha, 먼스터)', '미(Mi, 미스)'로 알려져 있다. 에린은 바다로 둘러 싸여 있으며, 에린의 주변으로 마나난의 섬 '맨' 을 비롯해 영국의 웨일즈와 알바니아(스코틀랜드), 그리고 세상의 끝 북쪽의 '거친 파도의 로흘란'과 남쪽 바다 너머의 저승과 몇 개의 작은 섬이 켈트신화의 주무대로 등장한다. 저승과 에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어서 저승의 주민들이 에린으로 오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배와 동료들을 잃어가며 그들은 약속의 땅인 에린으로의 항해를 계속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신들을 비롯한 여섯 종족이 에린에 도착하게 된다. 이들 모두 같은 날(순서적인 차이는 있지만..) 에린에 도착한다.

에린은 신들이 만들어 내기 이전부터 존재한 대지였다. 먼 옛날, 지금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곳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시기를 보냈는데 동쪽 끝의 나라(아마도 켈트인들의 원 거류지였던 유럽본토로 여겨진다.) 또는 저승으로 여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대재앙이 일어나 대지는 갈라져 사람들을 삼켰고, 그 대지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대홍수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른 신화에도 나오는 대홍수 전설의 시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 족(Van, Ban)

대재앙이 일어나게 되자 사람들은 세척의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쳤다. 이들은 배의 앞에 신상을 띄우고(켈트신화 이전에 이미 이들은 자신의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불행히도 지금은 거의 전해지지 않지만..) 그 인도를 받아 항해를 계속해 나갔다. 이들의 항해는 7년 3개월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 사이에 두 척의 배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한 척은 항해를 계속하여 드디어 약속의 땅인 '에린'에 도착하게 된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은 50명의 여성과 세 명의 전사였는데 이들이 ‘반(Van)’이라는 이름의 종족이었다.

당시의 에린은 매우 척박한 대지였다. 나무도 풀도 동식물도 그 어떤 생명도 아직 살고 있지 못했다. 반족이 도착한 40일 후, 에린에도 대홍수가 일어나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반족은 사라지고 말았다. 살아남은 유일한 반족은 ‘핀탄(Fintan)’이라는 남자였다. 핀탄은 수 백년 동안 바다 속을 떠돌다가 서쪽으로 부터 한 척의 배가 오는 것을 보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후 연어나 독수리 등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그때 마다 그는 자신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에린의 역사를 지켜보다가 인간으로 환생하여 그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 파르홀론 족(Partholon)과 포워르 족(Fomor)

핀탄(Fintan)이 죽으며 본 배는 파르홀론 족의 배였다. ‘파르홀론’이라는 이름은 이들의 종족의 우두머리의 이름이었다. 천명의 남녀가 에린을 향했지만 오직 한 척의 배만이 에린에 도착했는데 24명의 남자와 그들의 아내인 24명의 여자였다. 파르홀론은 이상한 검을 휘둘러 에린의 대지를 늘렸다. 인구도 매우 많이 늘어났는데 이들은 에린에 최초의 문명을 건설하고 알바니아(스코틀랜드)로 진출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파르홀론은 선주민과의 전투에서 사망한다. 에린의 파르홀론 족이 자신들의 문명을 건설한지 300년이 지나갈 무렵 바다 건너로 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족이 침입을 해오는데 그들은 ‘포워르’라는 종족이었다. 이들은 매우 괴물 같은 존재들로 산양이나 괴물의 얼굴을 가졌으며,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거대한 고깃덩이와 같은 형상이었다.

포워르의 왕은 팔도 다리도 없는 기괴한 형상의 '키홀'이었는데 그는 포워르 족을 이끌고 파르홀론 족을 쳐들어왔다. 그러나 파르홀론 족의 혼신을 다한 저항으로 포워르 족은 먼 북쪽의 바다, 세상의 끝으로 쫓겨가게 된다. 그러나 포워르 족을 몰아낸 다음날 악성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다. 파르홀론 족의 사람들은 모두 센 마이의 평원을 자신들의 묘지로 정하고 이곳에서 함께 죽었다. 전염병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 기세가 잦아들었는데 살아남은 사람은 파르홀론의 조카 '투안'뿐이었다. 투안은 20년 동안 동굴에서 살았는데 어느날 그는 벼랑 위에서 새로이 배가 들어 오는 것을 보고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핀탄은 연어, 수사슴 등으로 환생을 계속했는데, 핀탄처럼 환생을 해도 기억을 잃지 않았으며, 그 역시 에린의 역사서를 남겼다고 한다.

3) 네베드족(Nemhed)

파르홀론 족의 뒤를 이어 에린에 도착한 배는 투안의 종형제인 ‘네베드’가 이끄는 종족으로 네베드 족이라 불렸다. 네베드는 천여명의 일행과 서른 척이 넘는 배를 이끌고 에린을 찾아 나섰는데 에린에 도착했을 때는 한 척의 배와 4명의 남자와 4명의 여자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종족을 빠르게 늘려갔고, 평야도 열여섯, 호수도 열네 개까지 늘려나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왕궁을 지었는데, 그 이름을 ‘라흐’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왕궁의 수로를 지으면서 커다란 비극이 시작되었다. 낯선 이방인 네 명이 왕궁의 수로를 단 하룻밤 사이에 다 만들게 되자 네베드는 매우 놀랐으며, 그들의 힘이 두려웠다. 네베드는 즉시 이들의 목을 쳐서 죽여 버렸는데 이들은 파르홀론 족과 전쟁을 벌였던 포워르 족이었다. 파르홀론 족에 의해 북쪽의 바다로 쫓겨간 포워르 족은 토리 섬에 거대한 요새를 세우고 에린을 노리고 있었다. 네베드 족은 포워르 족과 네 번의 큰 전투를 치루었고, 네베드는 포워르의 두 왕의 목을 베며 그들을 다시 에린에서 몰아내었다. 하지만 다시 에린에 전염병이 돌아 네베드 족의 힘은 급속히 약화되어 포워르 족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노예생활로 지친 네베드 족은 네베드의 세 자손(피르후스, 에를란, 세울)을 필두로 다시 힘을 모아 토리 섬으로 포워르 족을 공격하지만 패해 세 명의 지도자를 따라 각각 바다 저 너머로 피신하게 된다. 이들은 각각 영국과 남쪽의 저승, 그리고 북쪽의 마법의 섬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영국으로 피신한 네베드 족은 브리튼 족의 선조가 되었고, 남쪽의 저승으로 향한 네베드 족은 ‘피르 보르’ 족의 선조가 되었다. 마법의 섬으로 피신한 네베드 족은 이곳에서 마법적인 지식과 지혜를 얻었고 이들의 자손이 신족으로 불리는 ‘투아하 데 다난’ 족이 되었다.

4) 피르 보르(Firbor)

피르 보르 족은 가죽부대를 타고 에린으로 들어왔다. 이때 피르 보르 족은 '피르 도우난' 족과 '갈리욘' 족과 함께 에린에 도착했다. 이들은 에린을 다섯 개의 지역으로 나누었고 각각 그 지역을 나누어 가졌다. 피르 도우난 족이 남북 먼스터와 코노트 지역을 피르 보르 족이 얼스터 지역을 가졌으며, 갈리욘 족은 라인스터 지역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들은 각 지역을 다스리는 왕 이외에 아르드리라 불리는 왕들의 수장을 뽑았다. 이 시기의 에린은 포워르 족의 침입을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피르 도우난 족과 포워르 족 사이가 혼인을 통해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5) 투아하 데 다난(신족)

‘투아하 데 다난’ 족(이하 데 다난 족 혹은 신족)은 여신 ‘다누’의 일족으로 켈트신화의 신족이었다.(일반적으로 켈트신화의 신은 이들 ‘데 다난’ 족을 말한다.) ‘데 다난’ 족은 자연을 조종하고, 죽은 자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사람의 마음까지 조정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혜가 매우 뛰어났다. 이들은 키가 매우 커서 거인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피부는 하얗고 머리는 금발이나 붉은 머리였으며, 푸른 눈동자를 지녔다.

데 다난 족은 북쪽의 이상한 섬에 정착한 네베드 족의 후손이었는데 이들은 이곳에서 마술과 학문, 지혜를 배웠는데 에린에 대해 매우 강한 향수병에 시달렸다. 데 다난 족은 에린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해에 나섰는데 도바르와 야르도바르라는 나라에서 7년을 보냈고, 로흘란과 알바니아 등을 방랑하기도 했다. 데 다난 족은 에린에 가까워지자 바다에 거대한 폭풍우가 일게 하여 피르 보르를 비롯한 세 종족이 자신들의 상륙을 모르게 했다. 사흘 동안 에린에는 피와 불의 비가 내리고 태양도 그 빛을 잃었다. 피르 보르의 세 부족의 드루이드들이 모여 이 폭풍의 마법을 물리쳤을 때 데 다난 족은 이미 코노트의 북쪽에 상륙하여 '타라' 의 성을 쌓은 뒤였다.

데 다난 족은 다시는 에린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타고 온 배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피르 보르를 비롯한 세 종족은 데 다난의 상륙이 매우 못마땅했다. 이들은 기둥평야에서 커다란 전투를 벌였는데 그 결과 피르 보르 족은 크게 패해 코노트와 에린 주변의 작은 섬들로 쫓겨났다. 이 전투를 가리켜 '제 1차 모이투라 전투'라고 부른다. 그러나 피르 보르 족을 비롯한 세 종족을 몰아냈다고 해서 에린에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포워르 족이 데 다난 족을 몰아내기 위해 에린을 침략하자 데 다난 족과 포워르 족 사이에 큰 전투가 벌어진다. 데 다난 족은 신들의 왕 누아자와 빛의 신 루의 활약에 힘입어 포워르 족을 몰아낸다. 이를 가리켜 '제 2차 모이투라 전투'라고 부른다. 루는 누아자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신들은 잠시동안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한다.

6) 밀레 족(Mile)

데 다난 족이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낯선 이방인인 이흐가 에린을 찾아오게 된다. 저승의 신 브레얀의 아들인 이흐는 탑에 올랐다가 저 멀리 섬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섬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흐가 본 섬이 바로 에린이었다. 이흐는 처음 에린에 도착해서 데 다난의 세 명의 왕으로 부터 환영을 받지만 침략자의 첩자로 오인되어 살해당하고 만다. 이흐의 부하들은 이흐의 시체를 저승으로 옮기고 그가 데 다난 족에게 죽음을 당했음을 알렸다. 복수심에 불타는 브레얀은 데 다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에린으로 향한다. 이들은 지도자인 밀레의 이름을 따서 밀레 족이라 불렸다. 밀레 족은 데 다난 족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데 다난 족을 궁지로 몰아간다.

데 다난의 세 여왕 중 에리우는 ‘너희가 에린을 지배하게 된 것에는 이견이 없다. 나는 당신들에게 맞서 싸우지 않겠다. 대신 앞으로 당신들이 정복할 이 땅을 내 이름으로 불러달라.’ 고 말했으며 그로 인해 ‘에린’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밀레 족은 에린을 손에 넣었지만 이후 밀레의 두 아들사이에 패권다툼 이후에야 비로소 통일 왕국을 이루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일랜드의 실질적인 선조로 여겨지고 있다.

7. 켈트신화-데 다난의 투쟁의 역사

앞서서 말했듯 켈트신화에서 일반적으로 신이라 부르는 것은 '투아하 데 다난' 족으로 이들은 여신 다누의 자손이었다. 이들이 에린에 등장하게 되면서 켈트신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1) 제1차 모이투라 전투

급기야 에린의 지배권을 두고 피르 보르의 세 종족(이하 피르 보르 족)과 데 다난 족 사이에 전투가 일어난다. 이때 데 다난의 지도자는 신들의 왕 ‘누아자’였다. 누아자는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기품이 있고 존경 받는 신이었다. 그는 빛나는 갑옷을 몸에 걸치고 ‘클라우 솔라스’라는 불의 검을 들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빛나는 황금색이었고, 진홍색의 망토를 걸쳤으며, 황금빛으로 빛나는 말을 탔는데 누아자는 태양의 신이기도 했다.

피르 보르가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누아자는 그들과 다투고 싶지 않았다. 누아자는 전사 브레스를 피르 보르 족에게 보내 에린을 둘로 나누어 각자 다스리며 지내자고 제안했다. 피르 보르의 왕 ‘요히’는 데 다난 족을 에린에 살게 하면 언젠가 자신들을 밀어낼 것이라 생각하여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이 실패하자 누아자는 데 다난 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피신했는데, 피르 보르 족은 그런 데 다난 족을 추격해 왔다. 급기야 두 종족은 '모이투라' 라고 불리는 평원에서 서로 대적하게 되었다. 끝까지 싸움을 피하고 싶었던 누아자는 다시 전령을 보내 에린을 나누어 가지고 외적에 대항하여 살기 좋은 에린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아자는 더 이상 싸움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150일 후에 서로 모든 전투준비를 갖추어 전투를 벌이자고 제안을 했고, 피르 보르의 왕 요히는 이 제안을 수락한다. 약속한 150일이 지나고 전투의 날이 되자 누아자는 한 가지 제안을 더 내놓았다. 서로가 동등한 숫자의 전사들로 전투를 벌이자는 내용이었다. 피르 보르의 왕 요히는 이 제안도 받아들여 양측은 동등한 숫자의 전사들을 내세워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같은 수의 전사들끼리 서로 일대 일로 전투를 벌였으며, 전투가 끝나면 자신의 진영으로 와서 치유의 샘물에 몸을 담그고 치료를 받았다.

첫날은 데 다난 족이 커다란 피해를 입고 물러났지만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데 다난 족이 다시 맹렬한 반격을 개시하여 서서히 전투의 우위를 잡아갔다. 그러나 넷째 날 누아자는 피르 보르의 용맹한 전사 ‘스렝’과 일대 일로 싸움을 벌였는데 스렝은 피르 보르 족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였다. 한참의 싸움 끝에 스렝이 내려친 검에 누아자의 오른팔이 잘려져 나가고 말았다. 누아자는 황급히 마법으로 피르 보르의 눈을 멀게 한 뒤 가까스로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왕의 부상을 본 데 다난 족은 힘을 잃고 물러서는 대신 죽을 때까지 검을 놓지 않고 싸웠다. 수많은 피르 보르 족의 전사들이 쓰러졌고 그들의 왕인 요히도 죽고 말았다. 데 다난 족으로 싸움의 기세가 완전히 기운 것으로 보였지만 데 다난 족의 피해도 컸다. 피르 보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데 다난 족의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누아자의 세 아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여섯째 날 요히의 뒤를 이어 피르 보르의 왕이 된 스렝이 열 두 명의 친위대만을 데리고 데 다난 족의 진영을 급습해왔다. 이미 전투의 승리는 데 다난 족의 것이었으며, 피르 보르의 힘은 매우 약해진 상태였으나 스렝은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누아자는 왼손에 검을 들고 그와 대적하려 했지만 누아자는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신들은 싸우려는 누아자를 말리며 피르 보르 족에게 그들이 살 땅을 떼어주고 전투를 마무리 짓자고 했다. 그 결과 피르 보르 족은 코나흐타 지방을 얻어 그곳에서 살게 되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에린의 밖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팔을 잃은 누아자는 왕위에서 물러나고 그 뒤를 이어 데 다난 족의 뛰어난 전사인 브레스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계율상 불구가 된 자는 왕이 될 수 없었는데 누아자는 한 팔을 잃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왕위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2) 폭군 브레스와 빛의 신 루

누아자의 뒤를 이어 신들의 왕이 된 브레스는 신족인 데 다난과 마족인 포워르 족의 피를 모두 이어 받았다. 그의 전사로서의 능력은 매우 뛰어났으며, 외모 또한 매우 아름다워 ‘아름다운 브레스’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의 인품은 그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브레스는 시나 노래를 매우 싫어해 시인이나 광대들을 모조리 내쫓았고,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브레스는 아버지의 종족인 포워르에게 많은 공물을 보냈는데 이로 인해 데 다난의 백성들은 매우 불행한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오직 브레스만이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했는데 이때 데 다난의 뛰어난 음유 시인인 ‘코르플레’에 의해 브레스를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코르플레의 반 브레스 운동은 곧 결실을 맺어 데 다난 족의 그 누구도 브레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고, 전사들은 브레스의 곁을 떠났다. 브레스는 몸이 아닌 마음과 정신이 불구였기에 왕위를 박탈당하게 되었다. 왕위를 박탈당한 브레스는 자신의 일족을 이끌고 아버지의 종족인 포워르 족에게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이때 누아자는 신들의 의사인 디안 케트와 신들의 세공사 크라이드네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팔을 대신해 은으로 만든 팔을 얻었는데, 이로서 불구에서 벗어나 완전해진 누아자가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빛의 신 ‘루’는 변신과 의술사로 유명한 신인 ‘키안’과 포워르의 왕 발로르의 딸인 ‘에흐네’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는 금발의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전사였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빛이 나는 듯 했다. 그는 황금으로 만든 투구와 갑옷을 입었으며, 황금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는데 이로 인해 그 어떤 무기도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루는 전사로서의 능력은 물론 마법과 지혜에도 아주 능했으며, 수많은 마법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발로르는 자신의 외손자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후, 자신의 딸을 거대한 유리탑 속에 가두고 길렀다. 키안은 뛰어난 기술자인 ‘가바지 고’의 암소를 돌보고 있었는데 매일밤 꿈에서 유리 속에 갇힌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다. 또한 발로르의 딸인 에흐네도 소를 몰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의 꿈을 매일 꾸었지만 에흐네는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그저 아름다운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를 잃어버린 키안은 소를 찾아 헤매다가 포워르 족의 땅에 소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키안은 바다의 신 ‘마나난’의 도움을 받아 포워르의 땅에 도착하게 된다. 소를 찾은 키안은 유리로 된 탑에 갇혀 있는 에흐네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렇게 둘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계속되던 어느 날 마침내 에흐네는 사랑의 결실로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가 바로 빛의 신으로 불린 ‘루’였다. 이 사실을 안 발로르는 키안과 루를 죽이려 했지만 키안과 루는 마나난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발로르로 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루는 마나난의 양자가 되어 마법과 지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으며, 자신이 마왕 발로로를 무찔러야 하는 숙명에 대해 배웠다. 소년으로 자란 마나난은 피르 보르 족의 왕비 ‘탈튜’의 양자로 보내져 자라게 되는데 그녀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루를 매우 사랑하여 친자식처럼 키웠고 루도 그런 탈튜를 친어머니처럼 따랐다. 제1차 모이투라 전투에서 탈튜와 루는 데 다난 족의 포로로 잡히게 되는데, 탈튜는 루가 키안의 아들임을 밝히고 대 평원의 주인 '두아흐'와 결혼하여 데 다난 족의 일원이 되었다. 루는 새로운 양부인 두아흐에게서 요정의 마법을 배웠고, 요정 말을 타고 다니는 요정기사단도 얻게 되었다. 또한 생부인 키안으로 부터는 전사로서의 모든 것을 배웠으며, 할아버지인 디안 케트로 부터는 모든 의술을, 대장장이의 신 게브네로 부터는 모든 대장장이의 기술을 배웠다.

루는 다시 양아버지인 마나난에게 돌아가 많은 배움과 마법 무기들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나난의 아홉 아들들의 조력까지 얻은 후, 에린으로 돌아온다.

그의 숙명이 이끄는 대로 마왕 발로르와의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루가 다시 에린으로 돌아왔을 때 데 다난 족의 왕은 누아자였다. 이때 데 다난 족은 포워르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누아자와 데 다난 족은 발로르를 무찌를 신이 나타난다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압제를 견뎌내고 있었다. 마나난의 아홉 아들과 함께 에린으로 돌아온 루는 발로르의 세금 징수원들을 살해하고 다난 족에게 발로르에게 저항할 것을 외쳤다. 누아자는 때가 왔음을 알고 모든 데 다난을 모아 발로르와의 전투를 준비한다.

3) 제2차 모이투라 전투

자신이 보낸 세금 징수원들이 죽임을 당하고 데 다난이 저항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자신의 외손자인 루가 나타났음을 안 발로르는 급히 군대를 소집해 에린을 침략한다. 이때 루와 누아자는 급히 전략회의를 열었다. 신들의 아버지 다그자가 포워르의 진영으로 잠입하여 그들의 진격속도를 늦추는 일주일 동안 데 다난 족은 전투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누아자는 선봉으로 나서 전투를 벌이려 하는 루를 후방에 배치한 후에 포워르와의 전투를 벌이러 나갔는데 오직 루만이 마왕 발로르를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아자의 예상보다도 포워르의 군대는 강력했다. 전장은 시체로 메워졌으며, 전사들은 동료의 시체를 밟으면서 싸워야 했다. 누아자는 포워르의 군대에 실드 월이라는 전법으로 대항했지만 사흘이 넘도록 싸움에 결판이 나지를 않았다. 다시 전투가 혼전의 양상을 띄어가자 누아자는 포워르의 또 다른 왕 인디히와의 일대 일의 결전에 들어간다.

누아자는 인디히의 목을 베었지만 발로르가 보낸 죽음의 뱀 크로우 크루아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후방에 남겨진 ‘루’는 아버지와 친족들을 동원해 자신의 요정기사단을 불러 모은 후 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루가 도착했을 때 이미 신들의 왕 누아자가 숨을 거둔 뒤였다. 루는 누아자의 뒤를 이어 총사령관이 되어 데 다난 족을 이끌었다. 전투가 벌어진 넷째 날 드디어 루는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로 한다. 루는 발로르와 상대할 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전투에 임했다. 신들의 전사 ‘오마’ 에 의해 포워르의 왕자가 쓰러지고 요정기사단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포워르 족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드디어 포워르의 왕 발로르가 일어섰다. 발로르의 한쪽 눈은 마법에 걸린 사안(邪眼)이었는데 이 사안이 떠지는 순간 강력한 마법으로 모든 생명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이 사안을 뜨기 위해서는 건장한 어른 네 명이 간신히 발로르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야 했다. 발로르가 일어서자 루는 변장을 풀고 그의 숙명에 따라 발로르를 향해 돌진했다. 발로르가 사안을 뜨고 루를 쳐다보려는 순간 루는 마법의 창 '브뤼냐크'를 던져 발로르를 죽였다. 그리고 도망치는 포워르 족을 추격하여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었고, 브레스도 사로잡아 우유 300통을 먹이는 벌을 주어 죽였다. 이렇게 에린은 평화를 되찾았고, 루는 누아자의 뒤를 이어 신들의 왕이 되었다.


카톨릭" 파티마성모상" 비행기이동시카메라에 찍힌 사진 (평균 사람키보다 훨씬 큰 성모신령)

▶헝가리에 살았던 스키타이 (켈트) 인들 (금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답사에서)

중략

이 지역에도 다수의 원주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키타이 (켈트)가 이주해오면서 이들 원주민들의 흔적은 대다수 사라졌다. 이 지역의 스키타이 인들은 도나우 강을 경계로 서쪽은 켈트라 불리고 동쪽은 스키타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남아 사용했다. 켈트라는 명칭은 발칸으로 남하했던 스키타이 인들을 두고 말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말에서 잘 내려오지 않는 유목 민족의 특성을 그리스 인들이 매우 두려워하여 반인반마(半人半馬, 하체는 말, 상체는 사람)인 켄타우루스라는 신화적 기괴한 형체를 만들어냈다. 켈트는 그 켄타우루스의 후예라는 뜻에서 생겨난 말로 본질과 유전적으로도 스키타이와 같다. 그래서 사실 동일 민족인데 유럽에서 지칭된 언어적 특성상 나뉘게 된 것이다. 이는 쉽게 얘기하자면 중국 한족들이 바라보는 호(胡)와 흉노(匈奴)의 경계가 모호하듯이 당시 그리스 인들의 눈에도 켈트와 스키타이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이다.

[출처] 헝가리에 살았던 스키타이 (켈트) 인들 (금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답사에서)|작성자 대선우